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지만지 고전선집 494
소포클레스 지음, 김종환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28.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소포클레스

 

M에게

 

삶과 죽음

M, 내 주변의 어떤 친구는 종종 내게 이렇게 말했어. 죽을 때는 반드시 자살하겠

다고. 그런데 말이야, 지금까지 자살하지 않고 멀쩡히 살아있는 걸 보면 자살하기

가 사는 것보다 쉽지 않은가봐.^^ 어쩌면 그 친구의 그런 말은 '살고 싶다'는 말의

변형은 아니었을까? 자기는 살고 싶고, 살아가야 하는데, 세상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고, 자기 스스로도 힘드니까, 그런 식의 발언을 하면서 역설적으로 살아갔

던 것은 아닐까? 이 애기를 하니까 갑자기 에밀 시오랑이라는 철학자가 떠오르네.

에밀 시오랑도 종종 '자살하겠다'고 얘기했던 인물인데, 언제라도 자살할 수 있으

니까 오히려 자살을 미루고, 늙어서 자살하지 않고 평범하게 죽은 인물이거든. 그

에게도 '자살하겠다'는 말은 진짜 자살의 의미가 아니라 '살아가겠다'라는 말의 변

형이었던 것이야. 그러니까, 멀쩡히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게 죽음을 향해 스스로

다가가는 자살이라는 행위는 쉽게 할 수 없는 것이란 얘기지. 그냥 말로서만 '죽

니, 사니' 하는 거지.

 

살아가는 이들에게 죽음이란 그렇게 먼 거야. 말로서만 떠들수 밖에 없을 정도로.

하지만 평범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살아가는 동안에는

잊어버리려고 노력하지. 죽음에 대한 회피,무시,모른체하기는 현대인들에게 너무

당연하거야. 그런데 그런 노력이 오히려 현대인들이 죽음을 의식하고 있다는

반증은 아닐까? 우리가 죽음을 무시하고,회피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는 무의

식적으로 '삶과 죽음이 이어져 있다'는 문장을 깨닫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아무리 눈을 돌리려 해도 죽음이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모른체하려 한 것은 아닐까? M,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를 보면서 삶과 죽음을 생각하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비극적인 운명의

주인공인 오이디푸스의 죽음을 보면서 삶과 죽음의 상호작용은 쉬운 듯 하면서,

쉽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깨달았거든.

 

오이디푸스의 마지막 모습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오이디푸스 왕>의 다음 이야기야. 오이디푸스 3부작

의 두번째 이야기로서,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 오이디푸스의 마지막 모습을 그리고

있어. 그런데, 시간 순으로 보면 두번째 이야기지만, 작품이 쓰여지고 상연된 것으

로만 따지면 마지막 작품이야. 여기서 잠깐 오이디푸스 3부작에 대해 잠시 애기해볼

께. 3부작을 작품 내부의 시간대로 놓고 보자면 <오이디푸스 왕>,<콜로노스의 오이

디푸스>,<안티고네> 순이야. 하지만 쓰여지고 상연된 순서대로 보자면 <안티고네>

가 가장 먼저이고, 그 다음이 <오이디푸스 왕>이야.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는 소

포클레스의 유작으로, 소포클레스가 죽고 나서 이름이 똑같은 손자에 의해 상연된

작품이야. 소포클레스는 자신이 죽고 나서야, 오이디푸스를 죽음의 세계로 돌려보낸

셈이지.

 

소포클레스가 왜 이 비극적 주인공의 마지막을 자신의 마지막 작품으로 했는지에 대

해서는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어. 그냥 마음대로 상상할 수 있을 수는 있겠지. 어

쩌면 소포클레스는 자신이 가장 마음을 쏟았던 자기 작품 속 비극의 주인공을 죽음

다가오는 시점에서 함께 동반자로 삼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이 모든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망상이야. 그러니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기를.^^) 소

포클레스가 태어난 콜로노스에서 오이디푸스가 최후를 맞는다는 점도 나의 이런 망

상에 힘을 보태고 있어.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자기가 가장 아끼는 작품 속 인물의 죽

음을 맞게 하는 건, 자신과 함께 떠날 동반자에 대한 배려가 아닐까? 아니면 너무나

혹독한 운명을 부여해서, 온갖 고생을 한 오이디푸스에 대한 동정심의 발로일 수도

있겠지. 오이디푸스가 죽음을 맞는 장면을 쓰면서 소포클레스는 이렇게 말했는지도

몰라.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게, 친구여. 곧 있으면 따라갈테니.' 이거 너무 어이없는

망상인가?^^;;

 

그래도 소포클레스가 자신의 마지막을 앞두고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글로 썼다는

봤을 때, 그가 오이디푸스라는 인물에게 어떤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확실한

것 같아. 애착이 없었다면 어떻게 노년에 이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 애착이 있었

비극으로 마무리 지어진 <오이디푸스 왕>의 뒷 이야기인 <콜로노스의 오이디

푸스>를 쓰고, 오이디푸스에게 비극적인 운명의 마침표라고 할 수 있는 죽음을 선사

했겠지. 그래, 이 작품을 보면 알겠지만 진짜 오이디푸스에게는 죽음이야말로 최고의

휴식이었어. 살아서 친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를 아내로 삼았으며, 자식이자 형제

매들인 이들을 자신의 손으로 낳은 근친상간의 패륜을 범하고, 그 모든 걸 깨닫고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되어 어둠속에 자기자신을 유폐시키고, 계속해서 방랑할

밖에 없는 이 불운한 비극적인 인간에게 살아간다는 건 벌 그 자체이자 고통의 연

속이었던 거야.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서도 그의 불행은 계속 이어져. 자신이

방랑하는 것에 상관없이 오직 테베의 왕위를 차지하는 것에만 관심을 가졌던 두 아들

은 서로 대립하다 결국 원수지간이 되어 싸우고, 오이디푸스의 시신을 차지하는 쪽이

앞으로의 전쟁에서 승리한다는 신탁때문에 테베의 시민들과 크레온, 권력다툼에 밀려

테베에서 쫓겨난 아들 폴리네이케스가 오이디푸스를 노리고 검은 마수를 뻗쳐오지.

장님에다 아픈 몸을 이끌고, 딸 안티고네의 손에 이끌려 간신히 걸음을 옮기는 이 불쌍

한 노인에게 운명은 마지막까지 잔인했던 거야. 신탁에 따라서 자신이 최후를 맞는다

고 정해진 콜로노스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그에게 죽기 전까지는 잠시간의 평온을

허락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래도 죽음은 죽음이더군. 태어났으면 죽는게 너

무나 당연한 인간의 삶에서, 이 당연함이 불운한 오이디푸스의 삶에서 어찌나 행복으

로 여겨지던지. 누구나 맞는 마지막이 그에게는, 그 누구와도 다른 삶의 선물이었던

셈이야.

 

오이디푸스와 소포클레스를 기억하라!

오이디푸스의 죽음이 완벽하게 평온한 것은 아니었어. 죽기 전까지 많은 시련을 겪거

든. 또 비극을 불러온 자신의 격한 성정을 역시 제어하지 못해서 고생하거도 해. 그래

그의 죽음은 선물이 확실해. 자신을 가장 사랑했고, 자신이 가장 아꼈던 딸 안티고

네가 처남인 크레온 때문에 안타깝게 죽는 상황과,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신의

혈육인 아들들이 권력 때문에 싸우다 서로 죽이는 걸 보지 못한다는 축복을 받았거든.

죽었기에 보지 못했고, 보지 못했기에 조용히 눈을 감을 수 있었지. 만약 더 오래 살

서 그 모든 장면을 봤다면 그는 죽음을 맞아서도 제대로 눈을 감을 수 없었을 거야. 하

지만 보지 못했기에, 그는 별다른 걱정없이 평온하게 죽음을 맞았던 거지. 뿐만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와 함께 마지막에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고, 그리스 신화의 영웅 테세우스가 그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그의 마지막

을 지켰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니 그의 죽음은 선물이 맞을 거야.(이게 선물이 아니라고

여겨진다면 한 번 <오이디푸스 왕>의 마지막을 떠올려봐.^^)

 

신들은 그의 삶을 가혹한 비극의 장으로 만들었지.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그에게 평온

을 안긴 것 또한 신들의 계획이었어. 이 불가해한 운명의 신비, 삶과 죽음의 희비극적

인 교차, 아름다운 비극이자 비극적 운명극이기도 한 오이디푸스의 마지막을 보면서

내가 느낀 감정은 한 가지 말로는 쉽게 표현이 안 될 것 같아. 그의 성공과 몰락, 그의

자식들의 미래, 그 자신의 마지막을 담은 오이디푸스 3부작을 모두 봤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 M, 나는 이 3부작에서 삶의 무서움과 괴로움, 삶의 신비를 봤어. 그리고 인간

의지의 아름다움과 자연과 운명 앞에서 무력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나약함도 봤지. 이

모든 모순적 사실들이 나를 하나의 감정으로 이끌지는 않더군. 복합적이기도 모순적인

감정이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를 읽고 나서 샘솟았던 것이야. 그걸 뭐라고 한 가지

로 말하기는 그렇지만, 그나마 한 가지 문장은 머리를 스치더군. 그건 '평온한 죽음을

맞고 싶다'는 염원이었어. 우스운 얘기지만 평균 수명이 80세를 바라보는 이 시대에 30

대 초반인 내가 평온한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갑작스럽게 하게 된거야. 이걸 나이 드신

들이 본다면 얼마나 우스워할까?^^ 그래도 나는 그 생각을 굽힐 생각은 없어. 나는

진짜 평온하게 죽음을 맞고 싶거든.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역시 이상한가?

^^ M, 그래도 반드시 평온한 죽음을 맞고 싶다는 내 생각에 변함은 없어.

 

이제,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에 대한 글을 마칠 시간이야. 더불어 오이디푸스 3부작

에 대한 글도 모두 끝이야. 이렇게 적고보니 뭔가 한 것 같지만, 글쎄 그건 삶이라는

과정의 일부분에 불과한 일이었겠지. M,나는 이렇게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게 된 것이야. 이거 너무 소포클레스의 운명론 같은 발언인가?^^ 분명한 건 내가 이

3부작을 읽는 동안 행복했고, 삶에 대해서 예전보다 조금 더 무언가를 알게 되었다는 사

실이겠지. 그게 나의 운명이었어. 운명, 이젠 이 두 글자의 무게감을 마음 속에 더 깊이

새길 수 있겠지. 피할 수 없는 게 운명이라면 더 이상 피하지 않겠어. 이 3부작을 읽었

던 것처럼, 오이디푸스처럼, 운명이라면 받아들이겠어. 이게 오이디푸스 3부작을 읽은

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겠지.^^ 마지막으로 오이디푸스와 소포클레스 모두 저 세상

에서 행복하게 지내기를 염원할께. 그럼, M 다음에 만날 때까지 이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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