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관 살인사건 스토리콜렉터 7
오구리 무시타로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로드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24.흑사관 살인사건-오구리 무시타로

 

살다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내가 왜 살고 있는 걸까?'하는 의문의 들 때가 있다. 사실 산다는 건

어느 정도의 자동적인 메커니즘에 가깝기 때문에, 특정한 사이클에 갇히기 쉽고, 그것 자체를

의문시하거나 회의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진화라는 노도와 같은 파도를 거쳐온 인간의

뇌는, 가끔식 그 쉽지 않은 일들을 이끌어내는데, 삶에 대한 의문 제기도 뇌가 가끔씩 이끌어내는

것 중에 하나일 것이다. 어찌보면 쓸데없는 행동 같지만, 뇌가 가끔씩 이런 일들을 벌인다는 것은

, 이것 자체가 분명히 하나의 기회를 우리에게 선사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삶의 질을 높이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를 뇌가 제공한다는 말이다.

 

독서도, 많이 하는 이에게는 자동적인 부분이 있다. 읽다 보니 읽는 거고, 받아들이다 보니 받아들

이는 거라는 식의 독서. 많이 읽다 보니 비판적이거나 꼼꼼한 독서보다는 그냥 기계적으로 문자들

읽어나가는 행동을 반복하는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런 독서를 하고 있는데, 이 기계적인

독서 속에서도, 주관을 가지고 무조건적인 수용을 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나의 독서가 어느

정도의 자정작용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면서 동시에 아직 그 정도 자정작용 밖에 하고

있지 않다사실의미한다. 아직 나는 이 정도 수준인 바, 무언가를 더 채우고 싶다는 욕망에

이끌려 나는 계속해서 읽어나가고 또 읽어나가는 먹깨비 독서를 계속하고 있다. 채워도 채워지

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계속해서 읽어나가는 것이다. 이쯤되면 마르크스의 물신을

능가하는 '책신'이 내머리강림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더,더 많은 책을 원하고, 읽기

원하는 책신이 내 머리를 지배하고 있다얘기이다. 책신이 도사리고 있는 한은 쉽사리 기계적

인 독서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내 독서의 딜레마이다.

 

하지만 가끔씩 이 기계적 독서를 깨뜨려버리는 책들이 등장한다. 어떤 책은 읽다가 바로 뇌에서

거부반응을 일으켜, 책을 덮어버리게 만들고, 어떤 책은 큰 감동과 재미를 선사해서 마음을

쥐고 흔들고, 어떤 책은 이게 도대체 뭔지 궁금하게 만들어 기계적인 독서를 거부하게 만든다.

<흑사관 살인사건>은 도대체 이게 뭔지 궁금하게 만들어 나의 기계적인 독서를 깨부수는

책이었다. 사실 이 정도 책이면 뇌에 거의 핵폭탄을 맞은 것과 다름없다. 어떻게, 책을 읽는데

30%도 이해를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읽어도 읽어도 도대체 이해를 못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내가 그렇게 머리가 나쁜 건가? 아면 나에게 언어적인 장애가 있는 걸까? 분명히

한국어로 쓰인 것은 맞는데, 이해를 못하겠다는 건 내한국사람이면서도 한국어를 잘 모른다

는 의미일까? 더 기분 나쁜 건 이 책이 추리소설이라는 사실이다. 독자의 재미를 추구하는

추리소설을 읽는데, 이해를 못한다는 건 지금까지의 내 독서가 헛되고 헛되다는 의미일까?

내가 읽은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나 들뢰즈나 데리다의

책이 아니라 분명히 사람이 죽고, 죽인 범인을 찾는 추리소설이 맞는데, 나는 도대체 왜 이해를

못하고 있는 걸까? 어떻게 처음부터 끝까지 탐정이 말하는 장광설과 추리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일까? 진짜 뭐가 문제인 걸까?

 

생각해보면, 내가 이 책을 펼쳐서 읽었다는 사실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일본 추리 소설의 3대 기서

라는 말에 그냥 덮어버렸어야 하는 건데, 나는 그 문구에 끌려서 책을 펼치고 읽어나가기 시작

했다. 그리고 내가 출구없는 미궁에 갇혀버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죽어

가고, 탐정은 헛소리를 지껄이며 자신만의 추리로 범인을 잡아가지만, 그 모든 것들이 어둠에

가려져 있어서 찾을 수 없는 그런 상황. 아무리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파악하려고 해도 어둠이

상황파악을 허용하지 않는 그런 상황. 방대한 지식량과 현학적인 장광설로 이해를 용납하지 않는 이 책은 진짜 추리소설의 대신전이라는 별칭이 딱 들어맞는다. 독서의 한 걸음이, 한 걸음이, 

어쩜 이렇게 이해를 용납하지 않는 독서가 있을 수 있을까? 작가는 의도적으로 헛소리와 황당하

기 그지없는 논리와 방대한 지식량과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어둠의 지식들을 들먹이며 읽는 독자

들을 늪으로 유도한다. 나는 그저 그 늪에 잠겨가다 '?'만 머리 위에 떠올리고 늪에 가라앉아

버린 셈이다. 다 읽고 나서도 도대체 뭐를 읽었는지 이해 못하는 독서의 죽음. '나의 독서'를

죽여버린 이 책에 복수할 수 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 복수하는 거다. 그렇게 복수를 외치며 나는 다시 이 책을 펼쳐든다. 아뿔사, 이미 나는 이 책이 펼치는 독서의 흑마술에 빠져버린 것이다. 악마의 유혹에 이끌린 자에게는 죽음이라는 결말 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것에 빠져버린 사람에게는 그 유혹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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