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혹은 시작
우타노 쇼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23.세상의 끝,혹은 시작-우타노 쇼고

 

'아내와 자식을 가진다는 것은 운명에게 볼모를 바치는 일이다.'

 

책 첫장에 나오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이 문장을 보면서 떠오르는 건, 이 문장에서

흘러넘치는 남성적인 자신감과 남성 우월주의가 당대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베이컨과 동시대를 살았던 셰익스피어가 쓴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보

알 수 있듯이, 그 시대에는 사회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무력한 존재였고, 가정의 지배권은 남성이 잡고 있었다. 가정이라는 배의 선장으로

거침없이 항해를 이끌어나가는 강력한 힘의 소유자인 남성. 바로 그런 당대의 사

회상이 있었기에, 베이컨은 자신감 있게 이 문장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우리 사회나 옆 나라인 일본 사회에서도 베이컨의 시대와 같은 강력한 남성상이 

정에 서도 지배적인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화면서 가정에

남성들의 위치는 과거와 같이 강하지는 않다. 지금 우리 시대의 남성들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할지는 몰라도, 가정의 강력한 지배자로 군림하기는 어려운

것이다.(물론 모든 가정이 동일한지는 나 스스로도 장담할 수는 없다.^^;;)

 

<세상의 끝,혹은 시작>은 그렇게 가정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남자의 이야

기이다. 아니, 이 남자에게 고군분투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이 남자는 절망의

구덩이에 빠져버렸고, 그 절망의 구덩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건 고

군분투라기 보다는 살기 위한 발악에 가까워 보인다. 이 남자의 발악은 숨겨져 있던

자식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식의 비밀을 알기 전까지는 자신이 행복하

다고 여겼고, 남의 일에는 무관심하기 그지없던 평범한 이기주의자였다.

 

그러나 자식의 비밀을 알고 나서는 그는 더 이상 자기삶이 평온하지 않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삶이 지옥의 구렁텅이에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자신이 행복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진실이 아닌, 기만과 허위로 가

득했기에 행복했던 그의 삶. 하지만 이 남자의 삶은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자 순식

절망으로 치닫게 된다. 진실이라는 태풍은 기만과 허위가 만든 행복을 용납하

않고 날려리고 앙상한 실제 삶을 드러내 보여준다. 삶의 앙상한 모습이 실제의

습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남자는 이제 앙상한 삶이나마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며

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왔으면 아마 궁금할 것이다. 남자에게 삶의 진실을 깨닫

해준 자식의 진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남자의 자식이 초등학생 연쇄유괴살

건의 범인이였다는 사실이다.

 

너무나 끔직한 진실 앞에서 남자는 절망했고, 기만과 허위에 가득찬 자신의 이기적

을 되돌아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행동은 이미 때늦은 행동이고, 과거를

식으로든 되돌릴 수는 없었다. 남자는 어떻게 이 사태에 대응해야 하는 것일까?

그에게 어떤 결말이 기다릴 것인가? 그는 자식이 연쇄살인범이라는 세상의 끝에서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아직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한 가정을 꾸려 나가지 못한

나는 감히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이런 끔찍한 일이 내 미래에 일어나

않기만을 기대할 뿐이다. 다만, 나는 이 책의 처음에 나온 베이컨의 말을 소설 속

현실과 지금의 상황에 맞춰서 바꿀 수는 있을 것 같다. 그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가상의 이야기가 던진 질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여기기에. 마지막

으로 이렇게 내가 바꾼 문장을 남기며 이제 이 부족한 글을 끝맺고자 한다.

 

'아내와 자식을 가진다는 것은 새로운 운명적 삶을 시작하는 일이다. 이 삶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적으로 당신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 각오를 해야 한다.

만약에 그런 각오가 없다면, 당신은 아내와 자식을 가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아내와 자식을 가진다는 것은 당신 자신의 모든 것을 걸 각오를

해야할 정도로 만만치 않은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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