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현정수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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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나더-야아츠지 유키토

마징가 Z의 원작자인 나가이 고의 전설의 걸작 <데빌 맨>을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인간과 악마의 대결에서, 인간들은 자신들 안에 숨은 악마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정말로

두려워하고 불안해한다. 인간의 외양을 하고 천연덕스럽게 인간 품에 살면서, 인간들을 죽이

는 악마들을 인간들은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를 가장 경계하며 두려워한다.

악마의 우두머리인 사탄은 이 공포를 이용한 계략을 꾸미고, 악마의 힘을 받아들여 악마들과

싸우는 데빌맨에게 사용한다. 악마들과의 싸움의 선봉장으로서, 정체를 숨긴 채 싸워나가던 주인

공이 데빌맨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몰래 촬영한 사탄은 그것을 공개해서 마치 주인공이 악마인

척 꾸민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 영상만 보고 데빌맨이 악마라고 여겨, 집단적 광기에

휩싸인채 몰려가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인을 죽여버린다. 극단의 고통을 겪는 데빌맨. 그는

자신이 지키려 했던 사람들에게서도, 자신의 상대인 악마들에게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양측 모두에게 미움 받고 박해받는다. 하지만 그는 묵묵히 자신을 증오하는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에,마지막까지 악마와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이미 그가 지키려 했던 인간

들의 실체를 봤음에도, 그는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것이다.

(이 내용이 정확하게 들어맞는지는 나 자신도 장담할 수 없다.^^;;)

 

여기서 이 만화가 얼마나 폭력적이고 선정적이며, 특별한지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데빌맨이 사랑하는 여인을 죽인 사람들의 심리에 관해 잠시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미쳐 날뛸 수 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심리는 공포에서 기인한다. '이 세상 누구도 믿을 수

없고, 이 세상 누구도 악마일 수 있기에 언제라도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파생된

공포는 영상을 통해 증폭되어 거침없이 한 여인을 죽이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한다. 그들은 세상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공포 때문에, 희생양을 내세우고, 그 희생양을 죽이면서 자신들의

공포를 잊으려 했다. 세상 누구도 자신을 죽일 수 있으며, 그래서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공포가

그들의 광기를 불러 일으킨 것이다.

 

하지만 이 공포는, 그래도 아직 자신에 대한 확신은 있는 것이다. 나 이외에 다른 누군가가 두렵고,

타인을 못 믿겠다는 것이지, 자기 자신은 그래도 악마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에 정통 미스터리 작가로만 소개된 아야츠지 유키토의 감각적인 청춘호러미스터리인

<어나더>는 이 확신마저 없는 상태의 공포를 다룬다. 모두의 기억과 실제적인 기록마저

날조해버리는 초현실적인 현상에 직면한 이들은 타인도 의심해야 하고, 자기 자신도 진짜

자기 자신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다. 남들도 믿을 수 없으며,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확신할 수 없는 공포. 그 공포란 어떤 것일까? <어나더>를 읽는 행위는 그 공포의 심연과

마주하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정통 미스터리 작가의 감각적인 변신이 빚어낸 공포의 축제에

참석받은 나는 그저 그 공포의 심연에 빠져 허우적대다 간신히 빠져나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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