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바이, 블랙버드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바이바이,블랙버드-이사카 코타로

에,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이어가는 중입니다. 갑자기 뜬금없이 이 말이
처음에 나와서 당황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저 문장은 제가 어떤 카페에 올린 제멋대로
쓴 글의 마지막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그래서, 정말로 어떤 개연성도,논리성도,합리성과도
상관없이 그 문장을 처음에 적어보고 싶어서, 이렇게 적어봅니다. 그러니까 제 모든 글은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고자 하는 저 자신의 무책임하고,제멋대로인 욕망때문에 벌어지는
하나의 사건이라는 말인데, 그 욕망이 전혀 상관없이 제가 적어나가는 글들을 이어준다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음, 막상 적고보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이건 제가 무심코
읽은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의 이해 못할 말들의 영향인가 봅니다. 처음부터, 죄송하다는
말을 드려야겠군요. 횡설수설 헛소리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아무튼, 이번에는 <바이바이,블랙버드>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건 이게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그전까지는 감상이나 생각이라는 말을 썼는데, 이제부터는 이야기라는 말을 써보려고 합니다.
책과 나만의 내밀한 대화. 세상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이 행한 그 대화. 그 유일무이한 대화가
세상이라는 책에 나만이 써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야기라는 말을 써보려 합니다.
아마도 세상과 우주를 하나의 책으로 여긴 보르헤스라면 제 말을 이해해 줄 것입니다.
(확신할 수는 없네요. 그는 스페인어를 쓰고, 저는 한국어를 쓰니까요.^^)
사실 이 책은 오랫만에 읽은 일본소설입니다. 오랫만이라는 이 말이 중요한데요. 왜냐하면 제가
최근 몇년동안 게걸스럽게 일본 소설을 폭식하다가 최근에 잠깐 일본 소설과 거리를 두고, 서양
책들만 잔뜩 읽고 있었거든요. 그게 뭐 어떤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은 아니고, 어떻게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는데, 막상 그렇게 하다보니 진짜 묘한 기분이 들더군요. 그 동안은
일본 소설을 계속 읽어서 아무리 서양 책을 읽어도 동양적 정서(음, 적고 보니 이 단어의 개념 
정의가 불확실하군요.)가 꾸준히 유지된 기분이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서양 책만 읽다 보니
제가 겉으로는 검은 머리에 노란 피부를 가진 인물인데, 속으로는 백인의 정체성을 가진 듯한
기분이 들더군요. 프란츠 파농이 말한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이 저한테는 <노란 피부 하얀 가면>
이 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한국 뉴스에는 약간만 관심이 가고 미국, 유럽 뉴스에
관심이 집중되더군요.(절대로, 절대로 저는 주식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점 믿어 주세요.)
그래서, 우연히 <바이바이,블랙버드>를 읽으면서 헤어진 옛 애인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그래, 예전에 이런 기분이었지.'라는 말을 적용할 수 있는 이 독서의 시간은 행복했습니다.
개인주의적이며 논리적이며 때로는 묵직하기 그지없는 서양 책들만 만나다가 캐릭터들의 개성과
간결하고 짧은 문장, 기발한 구성과 내용 전개로 읽는 즐거움을 전해주는 일본 소설 특유의 
맛을 접하고 보니 잊어버린 옛맛의 향취가 되살아나 기뻤습니다. 이번에 읽은 맛이 이사카 코타로
가 만들고, 예전 느낌이 나서 기뻤습니다. 예전의 그 기발하며 쿨했던 이사카 코타로의 모습이 
보였거든요. <오듀본의 기도>에서 허수아비가 말을 하고,<사막>에서 사막에 눈을 내리게 하겠다고 대학생이 외치고, <중력 삐에로>에서 방화와 DNA가 얽히고,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에서 존 레논의 목소리를 코인로커에 가두고,<러시 라이프>에서 도둑이 도둑질하다 동창생을 만나게 만든다는 그 이사카 코타로 말입니다.
(적고보니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네요. 그래도 분명한 건 그 얘기들이 다 그 소설에 나온다는
점입니다.)그런 이사카 코타로가 쓴 이별 소설이 이 <바이바이 블랙버드>인데요, 기발한 작가답게 평범한 이별 이야기가 아닙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호시노 가즈히코는 많은 남자들이 꿈꾸는
양다리도 아니고 다섯 다리를 걸친 아직 문어 수준은 아닌 바람둥이입니다. 순진하게 좋으면 좋다고 얘기하며 여자들에게 달려가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그것을 그대로 드러내며 여자를 진실되게 좋아하는 이 순진하고 어딘지 어리숙해 보이는 남자는 그 어리숙함 때문에 사채를 쓰고 못 갚아
'버스'타고 어딘가 무서운 곳으로 떠날 지경에 처하게 됩니다. 사채업자들이 파견한 초슈퍼 울트라
프리 아이언 원더우먼 마유미가 감시하는 상황에서 그는 초슈퍼~(이하 생략) 마유미에게 부탁해서 자신이 만난 다섯여자들과의 이별을 감행합니다. 물론 자신의 사정은 숨기고 마유미와 결혼한다는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요. 하지만 그는 단순한 말만 늘어놓고 이별은 하는 인물은 아니라서요, 이별하면서도 미안함에 그녀들을 위한 자신만의 이별의식을 벌입니다. 그것은 그녀들을 돕는 것이기도 하고, 그녀들에게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이 다섯 건의 이별의식을 보면서 갑자기 마음이 찡해지더군요. 그러니까 그때 제가 느낀건 논리적이며,합리적이며,철학적이며,분석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의식이었습니다.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파악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살며시 마음에 스며들어 마음을 울리는 미풍과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랑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마음, 그녀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마음, 인간이 인간을 진정 인간으로 생각하고 대해주며 마지막까지 자신의 관심을 놓치지 않을 때에야 나오는 진심이 가득 담긴 마음만이 줄 수 있는 그런 행복. 예,제가 본건 그 다섯 여자를 순수하게 진심으로 좋아하고,그녀들을 아낀 남자의 모습이자 자신과 관계맺는 이들 모두를 순수하게 진심으로 대하는 한 남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좌충우돌 활약하며 점점 변해가는 미워할 수 없는 한 여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느낌, 그 따뜻함, 그 개성, 그 훈훈함, 그 기상천외함, 그 사랑스러움.
어느 것 하나 좋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서양책이라는 음식만 먹다가 별미로 한번 먹어본
일본소설이라는 음식에 푹 빠진 상황이랄까? 이런 상황이라면 다시 일본 소설을 게걸스럽게 먹을지 모를 일입니다. 다시 일본 소설 폭식이 찾아올까요? 그건 저도 장담할 수 없겠네요.
그래도 한가지 확실한 것은 <바이바이,블랙버드>가 연주하는 선율을 잊지 않으리라는 점입니다.
그들의 모습이 내 마음에 깊숙이 박혔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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