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에 바라다 -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25.폐허에 바라다-사사키 조

1.
회색의 뇌세포를 이용해 사건의 트릭을 파악하고,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지적인 인물들보다는
일어서서 직접적으로 행동하는 활동적인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추리소설들을 써 온 사사키 조.


전후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 매몰되지 않고, 끊임없이 현실과 충돌하며,
경찰로서의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경찰관 3대의 이야기 <경관의 피>.
일본의 진주만 기습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인과 그를 막으려 하는 일본 경찰의
숨막히는 추격적을 그린 <에토로후발 긴급전>.

내가 읽은 사사키 조의 소설들 속 주인공들은 시대적 모순과 현실의 부조리함 앞에서 무너지거나,
굴복하기 보다는 언제나 힘겨운 싸움을 선택하고,그 싸움 앞에서 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들이었다. 그 결과가 비록 비참한 죽음과 파멸같은 부정적인 모습일지라도 그들은 자신들의
행동과 선택을 후회하거나 자책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그 부정적인 결과를 받아들인 채
쓸쓸한 최후를 맞거나,자신의 행동으로 후대 인물들을 살리거나 자신의 의지를 후대 사람들에게
넘긴다. 그런 의지적 인간들의 모습을 그리는 데 주력한 사사키 조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인간의 삶과 삶의 의지에 대한 희망이 불꽃처럼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살아보는 거다. 삶이 힘들거나 고달플지라도 살아보는 거다.'라는 문장이 그의 글을 읽고나면 폭포수처럼 마음에서 샘솟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세번째로 읽은 책인 <폐허에 바라다>는 앞에서 읽은 책과는 달랐다.
휴직 경관이 정신적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건들의 진실을 그린 연작소설집인
<폐허에 바라다>는 삶의 의지보다는 삶과 현실에 대해 본질적 질문들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내가 살아가는 공간의 한계에서 벗어난 존재인가? 나는 내가 살아가는 공간이 빚어낸 틀에
얼마나 얽매인 존재인가? 나는 나와 살아가는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인간관계망에서 얼마나 벗어낸 존재인가?
사사키 조는 <폐허를 바라다>라는 책에서 의지적 인간의 모습보다는 
인간의 삶이 공간적이며 문화사회적인 틀과 환경및 인간관계망의 영향속에서 얼마나
제약받는지를 끊임없이 조망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2.
한순간의 판단미스로 피해자의 목숨을 구하지도 못하고,범인을 잡지도 못하고,
심지어 범인의 자살까지 막지 못한 훗카이도 현경의 현사 센도 타카시.
그는 범행현장의 참혹함과 자신에 대한 자책과 죄책감으로 심각한 정신적인 타격을 입어,
휴직을 신청한다.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치료의 기간을 가지는 그.
그러나 비록 수사상의 실수를 저질렀지만,수사에 필요한 동물적인 직관과 합리적인 판단능력을
고루 갖춘 뛰어난 수사관인 그에게 범죄의 틀에 얽매인 인간들이 도움을 요청한다.
사람들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범죄와 마주서는 형사 센도.
범죄와 마주치는 과정 속에서 그가 목격한 것은 자신이 성장했고,살아가는 환경과 공간과 문화와
인간관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는 인간들의 어리석고,슬프고,무서운 삶의 모습이었다.

오지가 좋아하는 마을. 호주인들이 모여듬으로서 급속히 성장한 마을 니세코.
그러나 호주인들이 급작스럽게 늘어나는 만큼,
그곳에 사는 일본인들은 호주인에게 반감을 가지기 시작한다.
이 '오지'에 대한 반발심은 공권력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고,
센도는 한 호주인이 억울한 협의를 받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니세코로 향한다.
거기에 도착한 그가 목도한 것은 독일인이 유대인에게,
미국의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품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타자에 대한 격렬한 혐오의 감정이었다.

폐허에 바라다. 온천에서 치료를 위해 쉬고 있던 센도에게 15년전의 동료가 연락을 한다.
동료인 야마기시는 15년전의 비슷한 살인사건이 벌어졌음을 알리고,센도는 직감적으로
15년전 사건의 범인인 후루카와와 지금의 사건이 엮어있음을 알아챈다.
몰락한 탄광촌에서 극빈한 삶을 겪으며 성장한 후루카와는 어린시절에 이미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극한의 나락을 경험한 인간이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으며,하루하루의 생존을 걱정해야 했으며, 

자신과 동생을 죽이려고 했으며,
마지막에 동생과 자신을 버린 어머니 때문에 자아가 파괴된 자기파멸적 인간 후루카와.
센도는 그가 태어나고,자란 탄광촌의 폐허를 둘러보며 후루카와의 삶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후루카와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그가 만나는 것은 과거라는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자신의 삶을 파괴한 한 남자가 그려나가는 슬픔의 초상이었다.

오빠 마음. 과거의 그릇된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촌 마을의 살인사건 수사에 나선 센도.
그릇된 관행을 통해 기득권을 유지하는 동네 유지와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한
청년의 충돌끝에 벌어진 살인사건. 그 충돌의 틈바구니에서 센도는 이익과 기득권과
과거의 틀에만 집착하는 인간 마음이 풍기는 인간 마음의 썩은냄새를 맡게된다.

사라진 딸. 경찰의 실수로 살인범이 도주하다 차에 치여 죽는 사고가 벌어진다.
중요한 것은 죽은 범인의 집에서 여자를 감금하고 죽인 흔적이 발견된 것.
그러나 범인이 죽어버렸기에,죽었다고 여겨지는 여자의 시체를 찾을 수 없게 되고,
그 상황에서 경찰의 수사는 난항에 빠진다.
절망에 빠진 피해자의 아버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센도를 찾아가고,
센도는 아버지의 진심어린 설득에 넘어가 피해자의 시신을 찾기 위해,
한 변태성욕자의 과거를 쫓기 시작한다.

바쿠로가와의 살인. 17년전 신참시절에 맡았던 살인 사건에서 센도는 누구라도 죽일 것 같은,
누구한테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악당에 가까운 용의자를 증거부족으로 놓친다.
17년이 흘러 그 용의자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는 센도. 그는 사견 현장으로 향하고,
거기서 용의자를 둘러싼 사람 다수가 살해동기가 있는 현실과 마주친다.
17년전 사건의 빚을 풀기 위해 사건의 진실에 도전하는 센도.
거기서 그는 한 인간이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목격한다.

복귀하는 아침. 정신적 상처가 거의 다 치료되었음을 알고,복귀하려던 센도는
예전에 알던 지인의 부탁으로 살인사건 수사에 나선다.
사건 수사를 지속해나가다 센도가 만난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 대해서 품을 수 있는
극한의 악의였다.

3.
센도는 휴직한 형사이기 때문에,실제적인 수사와 체포를 할 수 없다.
다만 그는 현지 경찰의 수사에 도움을 주는 형태로 수사에 관여한다.
이것은 탐정이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일본의 현실을 반영한 사사키 조의 현실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센도는 사사키 조가 만든 현실적 탐정인 셈이다.
그리고 센도는 사사키 조가 지속적으로 그려나가는 의지적 인간의 모습도
반영하고 있다.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 겪은 정신적 상처를 다른 이들의 어려움을
돕고, 사건 해결에 도움을 주는 방법을 통해 치료해나간다.
인간들의 나약함과 어리석음과 슬픔과 어두움을 만나며 자신의 상처를 치료해가며
결국에는 자신의 상처를 완전하게 극복하는 센도.
하지만 그가 의지적 인간이라는 점과는 상관없이 그가 처한 일본의 현실은 암담하기 그지없다.
과거와는 달리 모든 이들이 희망을 품고, 모든 이들이 잘 살아갈 수 있는 경제적 성장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속에서 인간들은 절망하고,타자에게 혐오감을 품고,몰락한 환경에서
자라난 이들은 정신이 황폐화되기도 하며,경쟁 구조 속에서 낙오되어 뒤틀린 인간들은
현실에 증오심을 품고 비정상적인 행위를 일삼고,누군가는 승리와 이윤이라는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질주하다 많은 이들에게 큰 상처를 남기고,
그렇게 상처받은 이들은 또다시 다른 이들에게 악의를 품고.
이러한 현실 앞에서 센도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입장 바꿔 말해도 내가 혹은 우리는
무엇을 말하고,할 수 있을까?
센도는 그저 자신의 상처를 묵묵히 치유해갈 뿐이다. 그리고 묵묵히 폐허에 바란다.
더 이상의 비극이 없기를.
나도 센도처럼 하늘에,폐허에 바란다. 소설과 같은 비극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하지만 이 바람은 과연 이루어질까? 알 수 없다. 정말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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