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
고데마리 루이 지음, 김대환 옮김 / 잇북(Itbook)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23.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고데마리 루이

불륜과 살인과 폭력과 질투와 찌질남과 비정상적인 행동이 넘쳐나는  

올해 나의 일본소설 독서편력에
드디어, 드디어 단비가 내렸습니다.
그러니까, 이 비는 순수의 비입니다. 네, 순수의 시대가 아니라 순수의 비가 맞습니다.
불륜과 살인과 폭력과 질투와 찌질남과 비정상적인 행동을 양분삼아 자라난 올해 나의 일본소설
독서편력이라는 나무에 너무나 드물게 순수한 사랑이라는 양분이 덧대어진 거죠.
아하, 순수의 비를 맞고 순수한 사랑을 떠올리는 독서를 하다보니 기분이 좋아지네요.
물론 제가 솔로로서 크리스마스를 맞아 미쳐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저는 지금 지극히 정상입니다.
지극히 정상으로서 순수한 사랑 이야기에 기뻐하는 것이죠. 일본소설을 읽다가 너무 오랫만에
이런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만나서 너무 기분이 좋네요. 그리고 그것이 단순히 순수해서가
아니라 고데마리 루이라는 장인의 글 솜씨에 의한 것이라서 더욱 기분이 좋네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별미도 일반적인 음식을 먹다 먹어야 별미지, 별미만 먹다 보면
그건 더 이상 별미가 아니겠죠. 저의 일본소설 독서가, 특히 사랑관련 소설들의 독서가 정상적인
범위를 넘어서는 별미 위주였기 때문에, 저에게는 이제 더 이상 별미가 별미가 아니었습니다.
불륜하면 '아!! 불륜이야!'가 아니라 '아, 불륜이구나' 정도로 그칠 정도였죠.  

제가 일본의 연애소설을
읽는다는 건 언제나 '사랑과 전쟁'의 식의 이야기만 읽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죠.
간간이 순수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건 정말 미약한 수준이었죠.
하지만 이 미약한 수준의 이야기가 제게 주는 힘이란 어찌나 크던지!!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진 것 같지만, 그 정도로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좋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냈구요.
이 책의 작가인 고데마리 루이는 한국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에서 연애소설의 달인으로 통하는 작가입니다.
저도 처음 읽어봤는데, 이 작가의 이야기 구성 능력과 필력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실로 오랫만에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가슴에 북받치는 감성의 울림이 전해지더군요.
(어쩐지 이제부터 이 작가의 작품을 찾으며 읽어보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책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헤어진 두 연인이 만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현실의 이야기와
헤어진 남자가 헤어진 여자를 위해 만든 동화의 내용이 교차되어 펼쳐집니다.
현실의 이야기는 덴고와 아오마메가 만나는 <1Q84>가 연상되더군요. 

하지만 헤어졌지만 다시 만나기까지의 여정을
그리고 있으며 두 연인이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한다는 점에서만 비슷하고,
나머지 부분에서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은 <1Q84>와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1Q84>와 달리 여자가 가끔씩 모르는 남자랑 만나 섹스를 하지도 않고,
남자가 미성년자인 소녀와 종교적 의식같은 모습을 보이지만  

실제로는 원조교제에 가까운 행위도 하지 않고,
선구라는 종교 집단의 리더가 보여주는 것 같은 파렴치한 성범죄 행위도 없고,
리틀피플이 '호우호우'라고 외치지도 않고, 

공기 번데기에서 갑자기 사랑하는 연인이 출현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책을 다 읽고 나서 '이건 뭐지?'라는 단어를 떠올리지 않게 됩니다.
(<1Q84>에서는 이 '이건 뭐지?'라는 식의 모호함이 최대의 매력이라고 생각됩니다.)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은 모호함과 불확실함보다는  

정직한 스트레이트 펀치를 독자에게 날립니다.
두 사람이 사랑하고,헤어졌지만,다시 만나게 된다라는 펀치 말이죠.
하지만 단순히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라는 현실성만을 이 책이 강조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책에는 사랑의 환상성을 강조하고, 두 사람의 사랑에 감성을 더욱 더 빛내주는 동화가 있습니다.
위에서도 적었지만 이 동화는 오직 남자가 여자를 위해서 쓴 동화로서, 외롭고 사랑에 상처받은
유목민과 도둑 고양이(이건 번역어인데, 길냥이로 해주면 더 좋을 것 같군요.^^)의  

슬프고,아름답고,감동적인 유대를 그리고 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동화가 있었기에 두 사람의 사랑과 이 소설
자체의 감동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동화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하나의 이야기가 되는바,
저는 이 동화보고 울컥 감정의 물결이 샘솟더군요.
그러나 이 유목민과 도둑 고양이의 동화는 두 사람의 사랑이라는 틀속에서 바라보면  

더욱 우리의 감정을 진하게 만듭니다.  

결국 이 동화라는 게 두 사람의 사랑의 파생물이거든요.
어쨋든 사랑에 이끌려 다시 만날 수 밖에 없는 연인의 이야기를 읽으며,  

실로 오랫만에 연애소설에서 감동을 받은 것 같습니다.  

이 감정을 소중히 간직해 보렵니다. 아마도 그러다 보면 미래의 저도
누군가에게 감동적인 동화 한편 써줄 수 있지 않을까 하네요. 음, 욕심이 너무 큰가?

'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텅 빈 그릇이 되어줘.
그러면 넌 그 사람 평생 죽을 때까지 사랑하며 살 수 있을 거야.
처음부터 내용물이 꽉 들어 찬 그릇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담을 수 없겠지. ...
그릇은 속이 비어 있으니까 쓸 수 있어. 알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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