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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작은 거짓말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21.달콤한 작은 거짓말-에쿠니 가오리
<밀실살인게임>-살인,<설계자들>-살인에 이어 <좀비들>-좀비 얘기까지 갔다가
갈곳은 사후 세계나 순교,해부학의 영역일 것 같지만,
저는 과감하게 삶의 욕구 중에서 가장 생의 의지에 가까운 사랑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이야기가 순수한 사랑이나 낭만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아니라 불륜이라는 점이
조금 마음에 걸리기는 합니다. 역시 저라는 인간은 정상적인 이야기에 끌리지 않는 걸까요?
아니,아니 그럴리가 없습니다. 저는 지극히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밝고, 화사한 세상을 꿈꾸는 인간입니다.
(윽,거짓말 하려니 갑자기 속에서 올라오네요.)
어쩌면 너무 평범하게 살아가기에 간접경험인 책에서만은 조금은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을 보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식이라면 가오리의 책과는 조금 거리가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저는 의외로 가오리의 책도 종종 읽습니다.
여기서 의외라는 면이 중요합니다. 대체적으로 가오리의 책은 여성 동지들이 좋아하고, 많이 읽습니다. 그에 반해 남성 동지들은 가오리의 책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오리의 여린 감성과 드라마틱한 면이 없이 물 흘러가듯 흘러가는 잔잔한 일상의 묘사가 자신의 몸 속에
사바나의 전사의 피가 아직도 흐르고 있는 남성 동지들에게는 크게 어필하지 못하나 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는 가오리의 소설을 꾸준히 읽어오고 있습니다. 읽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있으면 읽게 되는 것인데요, 이게 뭐라고 말할 수 없이 요상합니다. 크게 끌리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이상한 약을 먹은 것처럼 계속 읽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읽다보면 이게 이상하도 묘한 매력이 있는 겁니다. 미약에 취한 것처럼, 물 흐르듯이 읽다보면 어느새 다 읽어버리는 소설이 저한테는 가오리의 소설인 셈이죠.
저는 이번에도 그렇게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이 <달콤한 작은 거짓말>입니다.
이 책은 <빨간 장화>의 뒤를 이은 결혼에 관한 연작 장편 소설인데요, 그 내용이 가오리 특유의
미묘한 감성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사실 <빨간 장화>는 큰 변화없이 담담하게 흐르는 권태기 부부의 일상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서 드라마틱과는 거리가 있는, 한국의 주말 드라마와 아침 드라마에 도저히 쓸 수 없는 너무나도 소소한 작품입니다.
그에 비해 <달콤한 작은 거짓말>은 잔잔하게 흐르다가 갑자기 반전의 신호가 울려 펴지는 작품입니다. 앞 부분에 남편에 대한 강한 집착에서 이미 어느 정도 이상한 기운이 감지되는데, 중반부를
넘어가면 그 이상한 기운이 현실이 되어, 부부는 거짓말이 일상이 된 거짓투성이 결혼 생활을 이어갑니다.
자신들만의 고독하고 쓸쓸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부부의 메마른 생활에 불륜이라는 비가 내린 것이죠. 부부에게 그 불륜은 달콤합니다. 불륜은 권태로운 부부의 결혼 생활에 힘을 불어넣습니다.
물론 부부는 서로의 불륜을 감춥니다. 서로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죠. 이렇게 부부는 자신에게
달콤한 작은 거짓말로 결혼 생활의 균형을 맞추어 갑니다. 이 부부에게 지금의 결혼이란 거짓의 토대 위에 축한 환상의 성인 셈이죠.
'사람은 지키고 싶은 사람에게는 거짓말을 해. 혹은 지키려는 사람에게.'
통념상으로 생각해본다면,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결혼 생활. 그러나 이것 또한 결혼의 서글픈 진실일 수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서늘해집니다. 세상의 모든 부부가 반드시 이렇게 살고 있지 않으리란 말을 자신있게 내뱉을 수 있을까요? 세상 모든 부부가 낭만적 열정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을까요?
아마도 이 질문에 우리는 쉽게 '네'라고 대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결혼에 대해 씁쓸한 감정이 드는군요.
하지만 씁쓸하더라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랑 곁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 혹은 그녀의 곁에 서서
그들과 함께가야 할 것입니다. 나중에 거짓말을 할때 하더라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그게 사랑이고, 결혼의 의미 아닐까요?
씁쓸하게 결혼의 뒷맛을 씹다 보니, 저는 거짓말 투성이 책을 덮고 있더군요. 아아, 저는 이제 현실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로 돌아오고 보니 제 옆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사무치더군요.
거짓말로 넘쳐나도 좋으니 누군가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잘못된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그 생각에 제가 젖은 것은 가오리의 소설이라는 미약에 제가 이번에도 넘어갔기 때문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다음 번에는 내 핏속의 사바나 전사를 소환해서 그때만은 넘어가지 않게 해보렵니다. 물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나만의 달콤한 거짓말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