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처에게 바치는 레퀴엠
아카가와 지로 지음, 오근영 옮김 / 살림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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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악처에게 바치는 레퀴엠 

결혼은 이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연애가 이상에 조금 더 치우쳐 있다면,
같이 오랜 시간을 살아가야 하는 결혼은 필연적으로
현실일 수 밖에 없다. 

그것은 한 사람과 같이 자고,먹고,마시고,싸우고,슬퍼하고,기뻐한다는 의미이다.
이같은 현실의 힘 앞에 연애할 때의 환상과 이상은 모두 사라져버리고
날것 그대로의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건, 때로는 인간적인 위력으로 우리를 즐겁게 하지만,
때로는 예상치 못한 모습에 당혹스러움과 놀라움을 느끼며
그 사람에 대한 나쁜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이혼하지 않는 이상은 결혼한 부부는 이 나쁜 인상을 덮어두는 방향으로 해서
살아간다. 그것이 쌓이면 익숙함이라는 삶의 관성이 되고, 삶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러나 그렇게 흘러가는 삶의 관성이 어느 순간 폭발하는 수가 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와 평소의 불만이 함께 섞여서
어느 순간 '펑'하고 터지는 것이다.
이 폭발은 때로는 싱겁게, 혹은 평화롭게 마무리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이 폭발은 살인이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릴 수 있다.

<악처에게 바퀴는 레퀴엠>은 삶의 관성에 이끌려 살아가던 남자들이
'펑'하고 터질지 모르는 모습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는 소설이다.
소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들이 '펑'하고 터지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친다.
어느날 갑자기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도중에 야금야금 폭발의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코믹한 상황극에,
유머 미스터리의 기수라는 아카가와 지로 특유의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전개에 휘둘리면서
이 폭발의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삶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고,
남자들과 여자들은 언제나처럼 다시 삶의 관성에 휘말려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악처에게 바치는 레퀴엠이 남편과 아내 모두를 건드리고 지나갔다는 사실을.
세상 누구나 나쁜 아내, 나쁜 남편이 될 수 있으며,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면 살인까지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결혼이라는 제도를 이끌어가는 두 주체의 삶이 금이 간 얼음처럼

언제 파괴될지 모르는 것처럼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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