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공놀이 노래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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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공놀이 노래
요코미조 세이시
451p

 


 

5.죽은 이복형에게 바치는 슬픈 추모의 노래
이 소설은 반드시 마지막의 해설까지 읽어야만 한다. 만약에 해설까지 읽지 않고, 단순히 평범한 추리소설로 여기고 책을 덮는다면 그건 반쪽짜리 독서에 불과할 것이다. 반드시 해설까지 읽어야만 이 소설이 작가 요코미조 세이시에게 어떤 의미이고, 그의 작품 세계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도가와 란포의 명맥을 이어, 전후 일본의 정통추리소설에서 진가를 발휘한 요코미조 세이시는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로도 유명한 일본의 국민탐정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로서 명성을 얻은 작가다. 여기까지 생각한다면 <악마의 공놀이 노래>는 단순히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한편에 불과하다고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해설까지 읽으면 이 소설이 작가의 가슴에 맺힌 감정을 노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이 감정을 중심으로, <악마의 공놀이 노래>의 감상문을 추리 소설과는 상관없는 방식으로 써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사랑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여기 유부남인 기이치로라는 남자가 있다. 마찬가지로 유부녀인 하마라는 여인이 있다. 둘은 각자의 가정이 있었지만 운명처럼 사랑에 빠지고,역시 운명처럼 각자의 가정을 버리고 사랑의 도주를 감행한다. 고베로 도망친 두 사람은 세이시라는 아이를 낳고 살아간다. 그런데 기이치로의 본처와 그녀의 아들인 가나오는 그들과 달리 절망의 늪에 떨어져 삶이 망가져버린다. 기이치로의 본처는 기이치로가 자신을 버렸다는 배신감에 치를 떨다 자살하고, 아들인 가나오는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생긴다. 혼자 남겨진 가나오. 하지만 가나오는 다시 아버지와 배다른 동생인 세이시와 만난다. 고베에서 살던 하마가 병에 걸려 죽고, 기이치로가 재혼을 했는데, 이 기이치로의 새부인인 아사에가 가나오와 세이시를 모두 거둬서 키우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운명적으로 만난 배다른 두 형제. 하지만 두 형제의 동거는 가나오가 젊은 나이에 '극단적 신경쇠약으로 인한 각기병'으로 사망함에 따라 불행한 결말로 끝맺는다.-

위의 글을 읽어보면, 요코미조 세이시가 가나오 모자에게 가지고 있는 복잡미묘한 감정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어린 나는 죄의식에 시달렸다. 그것이 아직까지도 지워지지 않는 강한 열등감으로 남아 오래도록 지속되었던 건 아닐까.'

요코미조 세이시는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가나오 모자에게 죄스러운 감정을 가졌을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와 흡사한 이 감정은,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자신의 존재 자체가 가진 커다란 짐이자, 살아가면서 평생 마음에 붙어다닐 죄책감이 되어버린다. 

시간이 흘러 요코미조 세이시는 전후 일본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로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명성을 이어가던 그는 일본이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며 사회 자체가 변화하면서, 거기에 발맞춰 미스터리 소설계도 따라 변화화면서 고리타분한 작가가 되어 위기를 맞기 시작한다. 변화의 기로에서 요코미조 세이시는 가슴 깊숙이 감춰두었던 이야기를 작품으로 써낸다. 그 작품이 바로 <악마의 공놀이 노래>이다.

이복형과 그 어머니에 대한 추모의 감정을 담아 써내려간 소설 <악마의 공놀이 노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전통을 이어가면서도 변화의 모색이 엿보이는 이 작품의 핵심에는 탐정인 긴다이치 코스케가 아니라 가나오라는 인물이 있다. 이복형인 가나오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이 인물은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엄청난 고통을 겪다 마지막에는 모든 것을 잃는 지경에까지 처한다. 소설 속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이미 아버지를 잃은 그는, 귀수촌에 전해 내려오는 공놀이 노래의 가사에 따라 진행된 살인사건에 의해, 사랑하는 연인과 여동생과 어머니까지 모두 잃는다. 

피해자 몰살이라는 전매특허를 가진 작가 요코미조 세이시와 피해자를 지키는데는 최악의 재능을 발휘하는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와 소설 속 범인이 합작해서 벌인 이 끔찍한 상황 앞에서 가나오는 현실의 가나오가 겪었을 법한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소설의 마지막에 요코미조 세이시는 현실의 가나오에게는 전하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 속에 묵혀두었던 말을 작중인물인 여배우로 성공한 오조라 유카리의 입을 빌려 소설 속 가나오에게 말한다.

'오빠, 여자인 저도 참고 견뎠으니 설마 어엿한 남자인 오빠가 견디지 못할 리 없어요. 강해지세요. 언제까지나 강하게 살아주세요.'

어쩌면 요코미조 세이시는 '강하게 살아 주세요.'라는 이 말을 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는지도 모른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어 확신할 수 없지만, 생전에는 하지 못한 걸로 여겨지는 이 말을, 가슴 속에 깊숙이 감춰두었던 이 말을 위해 가나오는 그렇게 힘든 고난을 겪어야 했고, 소설 속 인물들은 죽어가야 했는지 모르겠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특유의 음습하고 어두운 분위기에다 작가 자신의 슬픔까지 더해져서 더욱더 슬퍼진 <악마의 공놀이 노래>라는 이복형에게 바치는 추모의 노래가 끝나고 나서 나는 생각에 잠긴다. 추리 소설을 이렇게 슬픈 가족소설처럼 읽어도 되는 걸까. 하지만 이렇게 읽는 것이 허용된다면 나는 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너가 만약 요코미조 세이시처럼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 죄가 되는 거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과연 이 질문 앞에서 어떤 대답을 해야할까. 아니 우리 모두는 이 질문 앞에서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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