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멘 - 지만지고전천줄 25
프로스페르 메리메 지음, 이형식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소설 보다 오페라로 더 유명한 카르멘 

카르멘. 이 이름은 소설보다는 오페라로 유명하다.

아니, 실상 우리는 카르멘이 소설이었는지 어땠는지 모른다. 우리에게 카르멘은 언제나 오페라였다.

눈으로 보이는 역동성과 화려함, 귀로 듣는 열정적인 음악으로 대변되는 카르멘은 눈과 귀의 축제였지

문자로 읽어나가며 뇌로 사고하는 책의 이름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나 유명한 오페라 카르멘 대신,

지금은 잊혀져 버린 소설 카르멘을 떠올려본다.

화려한 오페라가 아닌 글 속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우리의 사고 속에서 생성시키는 그 카르멘을.

 

카르멘, 진정한 팜므파탈, 진정 자유로운 영혼

 

오페라 내용- 에스파냐의 세비야를 무대로 정열의 집시여인 카르멘과 순진하고 고지식한 돈 호세 하사와의 사랑을 그린 것으로,

사랑 때문에 부대에서 이탈하고 상관을 죽이기까지 한 그를 배신한

그녀의 마음이 이번에는 투우사 에스카밀리오로 옮겨가자

호세는 여러 모로 그녀를 타이르며 멀리 미국으로 도망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자고 설득하나 끝내 말을 듣지 않자

단도로 그녀를 찔러 죽이고 만다는 비극

 

팜므파탈-거부할 수 없는 관능적 매력과 아름다움으로 남성을 유혹하여,

그 남성을 죽음이나 고통 등 치명적인 불행의 늪으로 빠뜨리는 여성을 이르는 말

 

카르멘. 그녀는 팜므파탈의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능적인 열정과 뇌쇄적인 매력으로 남성을 유혹하여 자신의 매력에 빠뜨리고,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든 뒤

남자를 떠나버려 남자로 하여금 치명적인 고통과 불행을 느끼게 하여 파멸시키는 그녀야말로

진짜 팜므파탈 그 자체인 것이다.

 

남자들은 그녀의 눈빛에, 몸짓에, 목소리에, 당당함과 자부심에, 교태에 녹아내린다.

그녀가 파멸을 부르는 불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부나방처럼 달려든다.

자신을 파멸로 몰 것 알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의 올가미에 걸려들어,

남자들은 그녀의 품에 안긴다.

그들도 그녀가 자신을 망칠 것을 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향해 간다.

그 파멸의 유혹이 주는 극한의 쾌감이 그만큼 강렬하기에.

 

소설 속 카르멘은 오페라의 카르멘보다 더한 존재다. 오페라가 카르멘을 순화시켰다는 말처럼,

소설의 카르멘은 팜므파탈적인 측면에다 세상의 가치관과 사랑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스러운 성격을 더욱 강하게 표출한다.

도덕과 통념,지배적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비도덕적이고,불의한 일들을 능수능란하게 저지른다.

그런 짓을 저지르는 못하는 돈 호세를 무시하고, 나쁜 길로 거침없이 인도하는 것하며,

애인이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 호세와 관계 맺고, 다른 남자들과도 거침없이 자는 여인.

 

그녀에게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건 자기 자신의 자유다.

자유롭기에 한 남자에게 얽매여 살아가는 사랑은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다.

그녀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무시하고, 여러 남자를 만나며, 열정적으로 사랑하다가도 사랑이 식어버리면

가차업이 그 남자를 버리고 다른 남자에게 가 버린다. 그 남자의 마음 따위는 상관없이.

 

방종에 가까운 그녀의 자유. 그녀는 자신의 그런 자유를 얻기 위해 철저하게 몸과 마음이 무장되어 있다.

자유롭기 위해 사악해지고, 능수능란한 기교를 부리고, 엄청난 열정과 생존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유를 위해서라면 죽음 따위도 두려워 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소설의 마지막에 돈 호세가 미국으로 떠나자고 하며, 같이 떠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말에도

카르멘은 눈빛하나 변하지 않고 말한다.

사랑하지 않는 그와 같이 떠날 수는 없다고. 그런 사랑 따위 절대로 할 수 없다고.

누군가에 얽매여 살기 보다는 차라리 죽겠다고.

돈 호세는 그제서야 깨닫는다. 카르멘이라는 여인을 잡을 수 없음을.

그녀는 잡으려하면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여자라는 사실을.
 

아~~ 그녀는 자유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자유를 너무 사랑하기에, 한 남자를 계속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자유에 대한 사랑으로 남자들에 대한 사랑을 희생한 것이다.

이 극단적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가득한 카르멘.

 

왜 나는 그런 카르멘이 밉지 않은 걸까? 왜 카르멘을 비난하고 욕하고 싶지 않은 걸까?

아마도 내가 카르멘을 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비부인>의 나비처럼 순종적인 인물보다는 차라리 카르멘같은 인물에게 고통받고 싶은 것이다.

 

부나방같은 인물을 꿈꾸는 나.

바로 나 같은 인물이 있기에, 이 현대라는 시간에서도 현대판 카르멘들이 판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아직도 우리가 마음 속 깊이 무한한 자유를 동경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