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도시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8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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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로 칼비노 (지은이) | 이현경 (옮긴이) | 민음사 | 222p

 

1.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무한히 열린 구조를 가진 텍스트이자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이야기의 무한 연쇄가 가능한 소설이다.

 

소설 속 이야기들은 각자 따로 떼어내도 하나의 이야기로서 읽을 수 있으며,

그 이야기들이 모여서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라는 소설을 형성한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보이지 않는, 신비롭고 매혹적이고 아름다우며 쓸쓸한

상상 속 도시들이 모인 거대한 보이지 않는 이야기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칼비노의 놀라운 상상력이 빚어낸 이 보이지 않는 이야기의 도시의 건물들은

각자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그 이야기는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할지도 모르는, 존재했으면 하는, 존재했었지만 사라진, 미래에 존재할 수도 있는

도시의 모습과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과 도시의 시간을 그려낸다.

 

우리는 쿠빌라이칸과 마르코 폴로라는 안내자들의 도움을 받아 그 도시로 들어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우리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도시의 진실과 맞딱뜨린다.

 

2.

도시에 사는 이들은 자신이 보는 부분만이 도시의 전부라고 착각하기 일쑤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우리가 보는 부분만이, 우리가 살아가는 부분만이, 우리가 걸어다니고 돌아다니는 부분만이 도시인가?

도시는 우리가 바라보고 걸어다니는 부분만을 가리킨다고 할 수 없다.

도시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부분을 품고 있으며, 끊임없이 다른 구성원들을 받아들이고 확장하는

하나의 열린 공간으로서 우리의 인식 범위를 초월해서 존재한다.

 

과거를 품고 있으며 현재의 모습이 새겨진 채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도시를 하나의 모습으로 한정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식적 틀에서 비롯된 것일뿐 실제 도시는 우리의 인식으로 다 파악할 수 없다.

그곳은 끊임없이 건물과 영역을 늘려나간다. 그곳은 끊임없이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며, 모습과 형상이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그곳에는 우리가 모르는 이들의 삶이 흘러간다. 그곳에서는 지금도 누군가가 부부싸움을 하고 있으며,

누군가가 술에 취한 채 한풀이를 하고 있으며, 누군가는 범죄를 위해 사악한 숨결을 내뿜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도시를 하나의 형상으로 파악하고, 머리 속으로 정의내리는 그 순간, 이미 도시는 우리가 파악한 형상을 벗어나

달아나는 것이다.

'도시를 도시라 하면 이미 그 도시가 아니다' 라는 명제로 설명할 수 있는 이 혼돈의 상황은

우리가 도시를 완벽하게 정의내릴 수 없음을 나타낸다.

 

하지만 칼비노는 이 불가능에 도전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내 우리앞에 보여준다.

그 결과물이 이 소설인 것이다.

 

3.

칼비노는 존재하는 도시들을 고정된 언어로 묘사하거나 정의내리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존재하지 않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상상해서 언어로 형상화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도시를 언어로 고정시키는 대신 아예 도시를 자기 마음대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도시들은 단순히 가공의 산물이 아니다.

그 도시들은 칼비노 자신이 살고 지나쳤으며 다른 자료들을 통해서 보고 들은 도시들의 숨결과 삶이 스며있다.

그래서 이 도시들은 보이지 않는 가상의 도시들이지만 현실의 도시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실과 가상의 중간에서 요동치는 이 도시들.

 

이 무한히 열려 있는 도시의 형상들에다 칼비노는 인간들의 삶과 욕망, 현실적 삶과 사회에 대한 비판, 철학적인 관점을 섞어서

생생한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칼비노의 도시는 글속에서만 머물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그것은 글속에서 머물지 못하고 독자의 머리속으로 들어가서, 칼비노의 도시가 아닌 독자 자신만의 도시가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순간이 진짜 도시의 완성인 것이다.

 

칼비노의 상상이 만든 도시가 우리의 인식으로 들어와 자신의 도시가 되게 만드는

이 언어적 마법앞에서, 그 신화적 풍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감탄사를 연발하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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