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

 

드라마에서 산문으로

 

노희경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1998년에 방영한 <거짓말>이라는 드라마에서였다.

 

배종옥,이성재,유호정같은 배우들이 열연한

이 드라마는 많은 매니아들을 만들며

아직까지도 카페가 존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난 이 시절에 <거짓말>이라는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당시의 나에겐 노희경이라는 인물은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내가 노희경이라는 세 글자를 머리에 박은 것은



2004년 작품인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드라마였다.

 

거기서 고두심이 마음이 아프다고

자기 가슴에 빨간 루즈를 칠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내 가슴에 각인으로 남아 있다.

 

그때 나는 느꼈다.

천편일률적인 드라마가 넘쳐나는

한국의 드라마 상황에서

노희경이라는 작가는 자기만의 스타일을 간직한

보물과 같은 작가라는 사실을.

 

시청률에 얽매이기 보다는 사람냄새나는,

고독하고 외로운 현대인의 사랑과 교류를 살갑게 그리는

작가라는 사실을.

 

그런 그녀가 이제 산문집을 내었단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산문집을.

 

지극히 노희경스러운 글들

 

<꽃보다 아름다워>를 머리속에 품고 있는

나의 경우에 그녀의 산문집이 궁금했었다.

 

우연히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읽어 보았는데,

'역시'라는 감정과 함께 '조금 아쉽네'라는

기분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너무나 노희경스러운 글들의 홍수 속에서

외롭고 방황하는 현대인들에게

사랑과 삶의 따스함을 알려주는

그녀의 매력은 고스란히 살아 있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그녀의 글 속에서 그녀 드라마가 가졌던

감수성과 따스함은 여전히 살아있었지만

산문으로서의 매력은 드라마의 그늘에 가리워진

느낌이었다.

 

그녀의 산문속에서는

산문 쓰는 노희경보다는

드라마 작가 노희경이 강하게 살아 있었다.

 

그것이 나로 하여금

읽으면서 '역시'와 '조금 아쉽네'를

연발하게 하는 이유였다.

 

인간 노희경과의 솔직한 대면

 

드라마가 가공의 인물과 사건을 통해

작가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한다면

산문은 당연하게도 저자가

글을 통해 스스로의 솔직한 내면을 드러낸다.

 

이 책도 산문이기에

읽다보면 당연하게

인간 노희경과 솔직한 대면을 할 수 있다.

 

그것은 그녀가 만든 드라마의

원형적 인물을 만나는 느낌이며,

드라마가 아닌 그녀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치유받는 경험이었다.

 

고독을 벗어날 수 없는 그녀.

과거의 사랑을 후회하는 그녀.

최선을 다해 사랑하지 않음을 안타까워하는 그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그녀.

반항하는 그녀.

영화를 보고 자신만의 생각을 만드는 그녀.

아버지와 감동적인 화해를 하는 그녀.

 

이 모든 삶 속에서

그녀는 우리의 또다른 모습이였으며,

그를 통해 우리의 외로움과 아픔을

껴안는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녀와의 솔직한 대면은

우리 자신의 아픔을 껴안는 경험이자,

우리와 그녀의 사랑이 공명하는 경험이 된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모두 유죄?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모두 유죄>라는

도발적인 책 제목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유죄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사랑을 하고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사랑하고,

주변에 있는 지인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라는

의미로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사랑에 대한 고발보다는

사랑의 진정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 진정성이 우리에 가슴속으로 들어와 박히기를

그녀는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그녀의 이야기는 드라마에 머물러 있다.

그녀의 첫 산문집은

그녀 나름의 향기를 잔뜩 머금고는 있지만

꽃을 피우지는 못한 것이다.

 

그녀는 분명히 나아질 것이다.

다음에 책이 나온다면 더욱 나아질 것이고,

거기에서는 드라마에서 벗어난

자기만의 글을 보여줄 것이다.

 

다음 책에서 그녀의 글은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모두 유죄라는

도발적인 제목보다는

삶의 진실을 슬그머니 드러내는 제목과

드라마를 벗어난 자신만의 산문을 보여줄 것이다.

 

그때까지 나는

이 도발적인 제목에 ?를 붙이련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다고 유죄가 아니라는

의미에서.

 

그것보다는 지금 자신의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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