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 라이프
이사카 고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06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감상

 

표지

에셔의 그림.

분명히 계단을 타고 오르내리는 데도 불구하고

같은 층을 계속 돌고도는 사람들.

고도의 계산을 통해 완성되는 그의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이 그림은 일상이라는 틀을 깨지 못하고

그곳에서 맴돌 수 밖에 우리의 삶을 표상하는 듯 하다.

 

책을 펼치면

최고시속 240킬로미터인 신칸센 안에

두 명의 인물이 보인다.

 

화상 도다.

오만하고 탐욕스러우며 끊임없이 부를 추구하는

그는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하며

인간따위는 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존재이다.

그는 탐욕을 통해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만족할 줄 모르는 자본주의 체제 그 자체이다.

 

그의 곁에는 여자 화가 시나코가 있다.

시나코는 도다에게 속한 화가로

자신의 가능성만 믿고 발탁해준 젊은 화상을

돈 때문에 배신하고

도다에게 꼼짝 못하는 존재이다.

그녀는 자본주의 체제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틀속에서 노예처럼 살아가는 소시민을 상징한다.

 

작가 이사카 코타로는 그 둘의 이야기를 먼저 제시하며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세상의 틀이란게 이렇게 정해져 있고,

우리는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책에서

틀을 벗아나서 자신만의 길을 살아가는 인물들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세상의 기준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인물들일지 몰라도

그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이 세상을 향해 어퍼컷을 날리는 모습,

체제를 조롱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십시오.'

 

 

 

이제 등장인물을 소개할 차례이다.

 

등장인물

 

구로사와- 달변가이자 현자에 가까운 존재.

그는 누구보다도 침착하며 자신의 지식을

상황에 맞게 사용할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인물이기도 하다.

근데 그의 직업은 도둑

 

가와라자키- 아버지의 자살이후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다가

신흥 종교에 빠진 젊은이.

신흥 종교의 교주를 진짜 신이라고 믿는 나약한 인물.

 

교코- 남편을 버리고 축구 선수 출신의 정부에게 목숨거는 여자.

무능한 남편대신 선택한 축구 선수와의

결혼을 성공시키기 위해

그녀는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축구 선수의 아내를 죽이려고 한다.

직업은 남의 고민을 들어주는 카운셀러

 

도요타- 아내에게 버림받고, 직장에서도 해고되어

집도 없이 방랑하는 실업자.

끝없는 절망 속에서도 길거리에서 만난

개 한마리에게서 삶의 희망을 얻는다.

 

*도다와 시나코는 처음과 끝 부분에 한정되어 나오는 인물들.

중간중간 모습을 보이기는 하나 분량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들의 이야기

 

세상의 기준으로 본다면 실패한 하류 인생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현명한 도둑 구로사와.

자신의 집에 도둑질하러 들어온 도둑에 대해서 

단 몇마디의 대화로 정체와 상황을 파악하고

길거리를 걷다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 강도가

총을 들이대도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이 도둑은

책에 나오는 어떤 인물들보다도 뛰어난 삶의 현인이다.

 

신경질적인 카운셀러 교코.

정부의 아내가 되기 위해 살인을 서두르는 그녀는

엉성한 그녀의 정부와 함께 여러가지 실수를 저지르다

시체의 습격을 받는 상황까지 이른다.

 

의지박약아 청년 가와라자키.

신처럼 믿고 따르던 교주를 죽이라는 명령을 수행하던

그는 결국 미쳐 버린다.

 

개 때문에 의지적 인물이 된 실업자 도요타.

세상 모든 것에 버림받은 인물인 도요타는

개와 함께 온갖 우여곡절을 겪으며

점점 의지와 희망을 가진 인물이 된다.

그에게는 인간이 아닌 개가 희망이었다.

 

위의 소개처럼 따로 전개되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소설은 중간중간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연관되는

장면이 보이고

마지막에 가면 거의 하나의 이야기처럼 

모든 상황이 맞아떨어지는 소설적 마법이 펄쳐진다.

 

이렇듯 끝없이 연관되는 무한의 연쇄 고리 속에서

그들은 어떤 성공 스토리보다도 흥미진진한

비극, 호러, 스릴러, 코미디, 액션씬을 보여준다.

비루한 그들의 삶이 어떤 영화보다도

큰 재미와 울림을 던져주는 것이다.

 

러시 라이프

러시 라이프. 풍요로운 삶이라고 책에서 표현되는

이 단어는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처음에 도다와 시나코의 이야기 다음에 나왔을 때는

이 단어가 단지 물질적 성공만을 의마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마지막에 도요타와 개의 앞에 이 러시 라이프라는

단어가 다시 모습을 내밀 때

이 단어가 단순히 물질적 성공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풍요로움이란 물질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정신적 것일 수도 있고,

삶 자제의 여유로움일 수도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풍요로움이란

물질적인 요소로만 생각될 수 있겠지만

삶의 여유가 없다면, 정신이 풍요롭지 않다면

그건 진정으로 풍요로운 삶이 아닐 것이다.

단순히 물질적 충족을 원하고

탐욕스럽게 물질을 좇는 삶은

풍요롭다기 보다는 부족하고 결핍된 삶일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이들의 삶이 그것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애처롭고 비루하며 제정신이 아닌 삶이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삶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그것이 그들의 풍요로움이리라.

 

그러니 우리도 희망을 가지고 살자.

물질적으로 풍요롭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도

삶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이 풍요로울 수 있다면

그것 또한 풍요로운 삶이다.

 

작가에 대해서

 

속도감 있는 문체와 유쾌한 내용으로 대변되는

이사카 코타로는 그러나 주제에 있어서는

굉장히 무게감 있는 작가이다.

<중력 삐에로>에서는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비판을,

<마왕>에서는 파시즘의 문제를 해부하고,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에서는

권선징악의 비현실성을,

<오듀본의 기도>에서는 일본 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같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바

그는 무거운 것을 가볍고 재미있게 표현하는 희귀한 재주를

가진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주제의식보다는 가벼움에 무게를 둔

오쿠다 히데오와의 차별점이고

무겁고 암울한 분위기의 미야베 미유키같은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들과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물론 칠드런 같은 작품은 오쿠다 히데오와 비슷한 패턴처럼 보인다.

 

마지막으로

도다는 기차에서 내리기 전에

시나코와 내기를 한다.

기차를 내려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풍족한 물질적 조건을 제시한 다음

그것의 대가로 그 사람의 가장 소중한 것을

받을 수 있느냐의 내기.

만약 소중한 것을 받을 수 있다면

시나코는 도다의 물건이 되고

받지 못한다면 시나코는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도다는 자신이 이 내기에서 질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기차에서 내린 다음에

처음 만난 사람이 실업자 도요타였다.

도다는 그에게

안정된 직장과 높은 급여를 제안하고

그가 현재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개를 자신에게 줄 것을 요구한다.

 

과연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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