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 제134회 나오키상 수상작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3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현대문학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

1.

수학.

그것은 숫자로 현실을 표현한다.

그때의 현실이란 실체적인 모습이 아닌

숫자로 나타나는 추상적인 모습이다.

 

수학에는 숫자로 표현되는 논리가 있지만

현실의 아픔이 없다.

수학에는 울고 웃는 삶이 없다.

수학에는 펄떡펄떡 살아 숨쉬는 생명체의

감정이 없다.

수학은 거칠게 부대끼는 삶의 질곡이 없다.

 

따라서 수학은 현실과 떨어져 있는 셈이다.

거기에는 현실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숫자의 마법이 있지만

삶의 현실적 모습이 드러나지 않는다.

 

사랑.

사랑은 추상적이기 보다는 현실적이기를 원한다.

사랑은 울고, 웃고, 싸우고, 미워하고, 슬퍼하고,

함께 기뻐하는 현실이 있다.

사랑은 숫자처럼 명확하지 않지만

대신 그것을 이루어가는 사람들의 삶이 생생히

살아있다.

사랑이 현실적이지 못할 경우

그것은 짝사랑이나 스토킹같은 불완전한 아픔으로

표현된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이 수학과 사랑의 오묘한 조화를

그리고 있다면

반대로 <용의자 X의 헌신>은

사랑이 수학화된다면 된다면 어떤 비극이

발생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2.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수학에 웃고, 우는

수학에 미친 남자였다.

누가 뭐라해도 그는 수학자가 되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의 무게는 그를 수학자로

만들어 주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수학자가 되기를 포기하고

수학교사가 되었다.

 

수학교사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그 남자.

그는 희망없이 흘러가는 무의미한 시간 속에서

자신이 이미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살아있는 것이 아닌 죽어있는 삶.

수학이라는 여신의 축복도 없이,

점점 죽어가던 그는 결국 자살을 결심한다.

 

줄을 매달고 목을 메달려던

그때,

그녀가 나타난다.

 

옆집에 마침 이사왔던 그녀와 그녀의 딸.

죽음의 순간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를 보고

그는 수학 대신 그녀를 선택한다.

 

수학에 대한 사랑을

그녀와 그녀의 딸에 대한 사랑으로 바꾼 것이다.

 

이제 그는 수학에 마쳤던 그 모든 것을

그녀에게 건다.

 

<용의자 X의 헌신>은

그 남자의 슬픈 사랑의 기록이다.

 

3.

이시가미의 비극은 그 사랑이

현실적이지 않다는데 있었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갔어야 했다.

그녀에게 다가가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한다.

비록 그것이 아픔으로 끝나더라도

그렇게 했어야 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는 다가가는 대신

그녀를 지켜보고

그녀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녀를 도와주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의 비극을 초래했다.

 

자신의 사랑마저 수학을 연구하는

것처럼 했기 때문에,

그처럼 순수하게 추상적으로 사랑을 추구했기에

그는 파멸을 맞았다.

 

그의 파멸은 수학화된 사랑의 파멸이다.

아니 그것은 불균형한 사랑이 불러일으킨

사랑의 치명적 종말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사랑을 현실적으로 해야 한다.

멀리서 지켜보기보다, 필요할 때만 나타나기보다

그 혹은 그녀의 곁에 가서 자신의 사랑을 말하고

함께 울고 웃고 싸우고 슬퍼하고 기뻐해야 한다.

 

우리는 사랑이 사람과 현실을 떠나서

공중으로 뜨지 않게 끌어내려야 한다.

사랑이 삶의 무게를 가지고

우리 곁에 머물러 있게 해야 한다.

 

그게 우리 모두가 용의자 X가 되지 않는 방법이다.

 

*근데 그게 쉽게 될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시한번 나를 갖고 놀았다.

<방황하는 칼날>에서 극한대의 분노를 일으키게 했던 그가

이 작품에서는 엄청난 절망을 느끼게 해주었다.

역시 그래서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끊지 못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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