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숫가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리뷰

 

물기가 쫙 빠진 걸레와 인테리어 없는 초실용적인 건물

 

상상을 한번 해보자.

 

첫번째 상상

상상의 공간 속에 걸레가 하나 있다.

그런데 이 걸레에 잉여 물기는 거의 없다.

마치 인간이 아닌 기계가 한 것 같은 걸레의 물기짜기.

그러나 이 걸레의 물기를 짠 인물은 인간이다.

 

두번째 상상

이번에는 상상의 공간 속에 건물을 하나 떠올려 보자.

이 건물은 오직 주거라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서

모든것을 희생한 초실용적인 건물이다.

인테리어는 하나도 없는 아주 삭막한 건물.

 

물기가 쫙 빠진 걸레와 인테리어 없는 초 실용적인 건물.

<호숫가 살인 사건>를 읽고 내가 떠올린 이미지였다.

 

모든 것이 결말로 연결되는 소설

 

<호숫가 살인사건>은

미사여구나 수사, 잉여적 주장이

거의 배제된 채 하나의 결말로 달려가는

꽉 짜인 구성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냉정하게

결말과 주제를 위해서 모든 것을 거세시킨 상태로

분산된 조각들이 하나의 퍼즐을 완성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퍼즐 속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떠오른다.

 

사람잡는 교육현실.

 

사람잡는 교육

 

한국의 교육이 심각하게 과열된 상태인 것은 맞다.

그러나 <호숫가 살인 사건>에서 드러난

일본의 교육현실은 한국의 교육보다

더한 모습을 보여준다.

 

초등학교 때 이미 유명 사립중학교에 가기 위해서

부모들끼리 그룹을 만들어

아이들을 가르칠 과외선생을 뽑고,

과외스케줄을 작성하며

과외합숙을 시키고,

 

아이가 입시에서 혹시라도 떨어질까봐

사립중학교의 임원들을 매수하고,

성접대까지도 하는 교육 현실.

 

이미 이것은 교육이 아니라

광기의 현장이었다.

 

그리고 그 광기의 블랙홀은

인간들의 인성을 잡아먹는 것도 모자라

사람의 목숨까지 삼켜 버린다.

 

호숫가를 맴도는 원혼

 

아이들의 과외합숙을 따라서 호숫가로 온 부모들.

그들은 평온하고 별일없는 나날을 생각했으리라.

 

그러나 사태는 그들의 예상을 벗어난다.

갑자기 들이닥친 살인사건으로 인해서

그들은 모두가 공범이 되어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 노력한다.

 

<호숫가 살인사건>은 그 은폐의 과정을

생생하고 기록한 소설이다.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아닌,

인성과 사람을 죽이는 교육과

과열된 교육 현실이 불러일으킨 참사.

 

그 속에서 살해당한 원혼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호숫가를 맴돌고 있었다.

 

동시에 영혼이 파괴된 아이들과 부모들의 영혼도

호숫가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누구의 책임인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

 

책을 덮고 나서

피할 수 없는 무거움이 나를 덮쳤다.

 

*마지막의 반전은 히가시노 게이고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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