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제국 도코노 이야기 1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우리는 빛의 아이들이다.

빛은 어디에나 든다.

빛이 드는 곳에는 풀이 나고,

바람이 불고, 생명이 있는 것은 숨을 쉰다.

그것은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누구 덕도 아니다.
우리는 억지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실수로 태어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빛이 드는 것처럼,

이윽고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꽃이 열매를 맺는 것처럼 아주 오래 전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풀에 볼을 비비고,


바람에 머리칼을 나부끼며,

열매를 따서 먹고,

별과 새벽을 꿈꾸면서 이 세상에서 살자.

그리고 언젠가 이 눈부신 빛이 태어난 곳으로

다 함께 손을 잡고 돌아가자.

-<빛의 제국> 에피소드 중에서

 

서정적인 판타지

 

일반적으로 판타지 소설은 남성적 로망, 영웅의 활약,

세계의 존망을 둘러싼 대결과 같은

서사적이고 남성취향적이며 

스펙타클한 경향을 많이 드러낸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대부분의 판타지가 그러했기에

나는 판타지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일종의 고정된 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온다 리쿠의 <빛의 제국>은

반드시 판타지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려준 책이었다.

 

이 판타지 소설은 세상의 운명을 걸고

싸우는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남들과 다른 능력을 어쩔 수 없이 가지고 태어나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살아가면서 겪는 

도코노 일족들의 다양한 에피소드로 채워져 있다.

 

<빛의 제국>은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거대하지 않은 이야기가 주가 되는

서정적 판타지였다.

 

*2년전에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장르 문학의 다양성에 눈뜰 수 있었다. ^^;;

 

남들과 다른 그들, 도코노 일족

 

도코노 일족, 그들은 분명 우리들과 다른 존재다.

그들은 일반인들과 다른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영웅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우리와 다른 존재일 뿐이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려 하거나

세상을 구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며

일반인들 틈에서 조용히 살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그들이 가진 능력이나 상황이

그들의 평온함을 깨뜨리는 경우가 있다.

그럴때 그들은 운명에 저항한다.

그러나 그 저항의 순간에도

도코노 일족의 힘은 미약했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라기 보다는

세상에 휩쓸려 가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처럼.

 

커다란 서랍. 방대한 양의 서적을 암기할 수 있으며

인간의 기억을 읽어내는 하루타 일가의 이야기.

여기 등장하는 미쓰노리와 기미코 남매의

조상격인 인물이 나오는 것이

도코노 연작의 두 번째 소설인

<민들레 공책>이다.

 

두 개의 찻종. 미래를 내다보는 여인 미야코와

아쓰시와 인연 만들기.

 

다루마 산으로 가는 길.

도코노 일족이 살았다는 다루마 산에서 나타나는

기이한 환상을 보기 위해 등산길에 오른 두 친구의

어긋난 인연.

 

오셀로 게임. 자신들이 살기 위해

'그것'을 뒤집어야 하는 모녀의 고달픈 삶.

이 모녀가 성숙한 모습으로 나오는

소설이 도코노 연작의 세 번째 소설인

<엔드 게임>이다.

 

편지. 도코노 일족의 선생님으로

죽지 않고 장수하는 두루미 선생을

추적하는 한 남자의 편지들.

 

빛의 제국. 표제작으로 비극적 운명을 겪는

도코노 일족의 슬픈 이야기.

남들과 다르기에 숨어 살아야 했고,

전쟁 속에서 다르다는 이유 만으로

비극을 맞아야 했던 도코노 일족의 사연.

이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 중에서 유일하게

반전 평화와 소수자에 대한 포용 같은

묵직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역사의 시간.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아키코를 자각시키려는 기미코의 노력.

 

잡초 뽑기.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도시 곳곳의 잡초를 뽑고 사는 노인의 삶.

 

검은 탑. 아키코의 능력 각성기.

여기 나오는 인물 중에서 가장 영웅에

가까운 아키코의 놀라운 능력이 펼쳐진다.

그녀가 나올 다음 작품을 암시하는 듯도 하다.

 

국도를 벗어나. 도코노 일족의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나선 음악가 리쓰와 미사키의

이야기.

 

그들도,우리도 어차피 빛으로 돌아갈지니...

 

거대한 꿈이라기 보다는

소소하고 달콤한 꿈에 가까운 <빛의 제국>은

우리가 다가갈 수 없는

영웅이 아니라

우리처럼 상처받고, 힘들어하며, 사랑하고 싶어하는

특수 능력자의 이야기이다.

 

우리 속에 숨어있는 비범인인 도코노 일족들.

그러나 중요한 건 그들이나 우리나

똑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특수한 능력을 가진 인간의 일상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우리만의 일상을 영위하는 셈.

누구도 비켜가지 않는 공평한

레이스 같은 일상으로서의 운명.

 

그리고 그 레이스의 마지막에는

우리를 태어나게 만든

빛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때, 빛이 우리를 맞을 때,

우리가 그들과 빛으로

다 함께 손을 잡고 돌아가는 것은 어떨까?

 

그렇다면 정녕 즐거울 것이다.

그렇다면 진짜 빛의 제국이 펼쳐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코노 일족과 우리가 같이 춤추며,

손을 잡고 우리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상상은

그 자체만으로 판타지이지만

진정으로 아름다운 판타지다.

 

우리가 꿈꿔야 하는 판타지란 그런게 아닐까.

 

*이 책은 제가 처음으로 읽은 온다 리쿠 책입니다.

<빛의 제국>을 입고나서 온다 리쿠 책을 읽게 되었죠.

 

*도코노 연작의 다른 소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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