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만나러 길을 나서다
조병준 지음 / 예담 / 2006년 3월
평점 :
품절


되살아난 여행에 대한 그리움

 

한때는 여행을 미친듯이 그리워했다.

 

군대에서 근무를 서면서

눈앞으로 지나가는 기차소리에 가슴이 설레었고,

파랗게 펼쳐진 바다의 풍경에 넋을 잃고

그 바다를 지나서 어딘가로 떠나기를 꿈꾸고,

경쾌한 복장으로 나서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나 또한 어딘가로 떠나기를 수 없이 갈망하고 또 갈망했다.

 

그때는 어딘가로 떠난다는 것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그러나 군대를 제대하고 사회라는 틀 속에서

찌들어가면서

나는 어느새 여행에 대한 그리움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여행에 대한 그리움이

내가 모르는 나 자신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사실을,

나 자신의 또다른 모습을 간직한 다른 이들과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채

어느새 나는 그리움을 망각한

밋밋한 인간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였을까? 

다른 여행 에세이들은

내게 감흥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그 책들은 그 곳에 가면 좋겠다 혹은

거기에 가면 좋은 점이 있다 정도의

느낌만 불러 일으켰을 뿐

여행을 가야겠다는 마음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하지만 <사랑을 만나러 길을 나서다>는

다른 책들과는 달랐다.

나는 이 책과의 만남을 통해서

길로 나서서 길 위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나 자신의 영혼을 바꾸어가기 원하는

예전의 나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영혼을 위한 여행

 

<사랑을 만나러 길을 나서다>는

다른 여행 에세이와 다르다.

 

이 책은 여행지에 대한 소개나 감상보다는

길에서 만난 인연과

그것으로 인한 자기 영혼의 변화를

그리고 있다.

 

그래서 너무나 좋았다.

다른 여행 에서이처럼

여행지의 특성과 개인적 감상만

주욱 늘어놓은 식이었다면

이렇게 좋지는 않았으리라.

 

내가 책을 통해 만난건

인간 조병준의 영혼과

그 영혼과 교류한 다른 영혼들,

그리고 그 영혼들이 만나서 만들어내는 영혼의 공명이었다.

 

조병준씨의 여행은 몇일 정도의 여행이나

관광 목적의 여행이 줄 수 없는

영혼의 울림을 내게 던져 주었다.

 

영혼의 울림.

그것은 그의 여행이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영혼을 위한 여행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길들이 내 앞에 놓여 있었던가.

얼마나 많은 길들을 내가 걸어갈 수 있다고 믿었던가.

얼마나 많은 길들을 결국 밟아보지 못하고 잊어버렸던가.

내가 걸어왔다고 믿은 그 길들은 정말로

내 눈앞에 펼쳐져 있던 바로 그 길이었던가.

얼마나 많은 길에서 길을 잃었던가.

내가 갔던 그 많은 길들에서

아직도 끝나지 않은 길은 몇이나 되는가.

왜 길에 나서면 그렇게 가슴이 뛰었던가.

길이 끝날 때마다 다시는 떠나지 못하리라는

어설픈 절망은 왜 그리도 많았던가.

가고 싶은 길은 왜 그리도 많았는가.

떠나지 못한 길은 또 왜 그리도 많아야 했는가.'

 

떠나기 위해 돌아오는 여행

 

일반적인 우리들의 여행은

일상의 틀 속에서 갇혀서

영혼의 에너지를 소진하다

어느날 새로운 활력과 힘을 얻고,

삶의 휴식과 재충천을 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삶으로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다.

 

그때의 여행은 정주민의 여행이다.

우리는 벗어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우리의 고정된 삶을 위해서

떠난다.

 

그러나 장기 여행자나 영혼의 구도자들이 하는 여행은

다르다.

 

그들은 떠나기 위해 떠난다.

그들은 떠나기 위해 돌아온다.

그들은 떠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떠난다.

그들은 여행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떠난다.

그들에게는 여행이 삶이고,  

일상은 여행을 위한 다리에 불과하다.

그들은 길 위에서 살고,

길 위에서 자신을 만나서

자신의 영혼을 형성한다.

 

그들은 유목민의 여행을 한다.


 

30대를 여행에 바친,

떠나기 위한 삶을 살았던

조병준의 여행은

그렇기에 유목민의 여행이었다.

 

떠나자.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나는 그들이 그립다.

외딴 곳이지만, 모르는 곳이지만

나를 반겨주고 또다른 인연을 만들어줄

그들이.

 

나는 그곳이 그립다.

낯선 매력을 풍기며

나를 놀라움과 그리움에 젖게 해줄

그곳이.

 

나의 영혼은 목말라있다.

나의 영혼은 일상성의 감옥에서

자유를 잃고 방황하다가

여행이 만들어내는 그리움에 허기를 느끼고

반응하기 시작했다.

 

조병준이 다시한번 일깨워준

내 영혼의 유랑끼는

내가 떠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떠나는 것이다.

어디로라도! 어디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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