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월트 디즈니판 <노틀담의 꼽추>.
월트 디즈니는 법정에서 판사복을 입은채로
망치를 들고 최후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
나는 관객석에 앉아 그의 판결을 들었다.

 
'본 판사는 지금 여기서 말하겠소.
아름다운 에스메랄다는
헌신적이고 순수한 사랑을 보여준 콰지모도가 아니라
잘생기고 정의로운 피버스와 이루어져야 하오.
콰지모도는 단지 그녀와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기뻐해야 하오.

아마 콰지모도 본인도 이 결정에 만족할꺼요.'

 

뭐라고? 오만가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에스메랄다를 성심성의껏 구해준
최고의 순진남 콰지모도가
아니라 피버스랑 이루어진다고?
그건 에스메랄다의 결정도 아니고
이 만화의 원작자인 빅토르 위고의 결정도 아니고
월트 디즈니 너희 회사가 만들어낸 결정이잖아.

 

차라리 에스메랄다가
콰지모도의 사랑을 외면하고
콰지모도가 슬퍼하거나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게 훨씬 낫겠다.

 

뭐, 아이들의 꿈을 이루어야 한다고.
돈은 벌어야 한다고.
그래, 너희들의 장사속 앞에서는
아무리 뛰어난 명작도
한낱 상업적인 영화에 불과하게 되겠지.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너희들이 이 작품을 만든다고 했을 때부터
웬지 불길하더니만
이건 뭐 빅토르 위고의 명작을
완전 삼류 시나리오로 만든 것에 불과하잖아.
안 그래?
이제부터는 죽은 작가들에게 미안하지 않게
뛰어난 명작들은
너희들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지 말아라.
제발 부탁이다!!

 

2.



음, 그런데 생각해보면
뛰어난 문호인 빅토르 위고가 썼었던 원작도
한계가 있었어.

 
인간의 사랑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는
이 작품도 결국 외모 지상주의의
벽을 넘지 못했으니까.

 
생각해 봐. 최강의 추남인 콰지모도가
사랑한 것은 아름다운 에스메랄다야.

 
진정 콰지모도가 순수하다면
정신적 교감만으로도 사랑이 가능해야지.

물론 에스메랄다의 영혼이 아름답지 않다는
말은 아니야.

단지 사랑의 순수함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면
콰지모도의 상대가
아름다운 에스메랄다라는게 걸려.

 

진정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라면
겉모습이 아름다운
에스멜라다가 아니라
이 빠진 노파와 사랑에 빠져야 하는 거야.

 
그게 더 순수한 사랑이지 않을까?

아멜리 노통은 <공격>에서
이런 생각을 실천하고 있어.

 

아멜리 노통

' 콰지모도, 그의 영혼은 더럽고 천박하다.
... 그는 이 빠진 노파와 사랑에 빠져야 마땅하다.
그래야 그 주장이 설득력을 얻게 되지.'

 

3.

신사숙녀 여러분!!
여기 지상 최고의 추남 에피판 오토스를 소개합니다.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경악하리란 걸 장담합니다!!
'그의 얼굴은 찡그림 그 자체였다.'

 
그의 벗은 몸을 보게 된다면
여드름의 불가사의를 만끽하시며
화장실로 구토하러 직행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거 아시나요?
에피판의 직업이 모델입니다.

 
네? 농담하지 말라구요?
아! 농담이 아닙니다.
에피판은 진짜 모델입니다.
그는 추한모델로
아름다운 미남미녀 곁에서
그들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아름다운 것은 지극히 추한 것 옆에서
더 찬란한 빛을 발하는 것이죠.'

 

발상의 전환을 통해
추한모델로 성공하는 에피판은
돈을 많이 벌어도
자신의 성적인 순결을 지킵니다.

 

그도 자기 나름대로 순결한 사랑을 꿈꾸었던
것이죠.
그 사랑의 대상은
에텔이라는 아름다운 여배우입니다.

 
그녀는 에피판이 유명하지 않던 시절에
그의 얼굴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그를 인간처럼 대해준 유일한 사람이죠.

 
그래서 에피판은 그녀를 성녀로 생각하고
유일한 사랑을 퍼붓죠.

 
자, 에피판과 에텔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요?
아멜리 노통의 상상력은 어떤
결말을 만들었을까요?

 

4.

에피판.
그는 외모가 추한만큼이나
정신도 추한 인물이었다.
그는 아름다운 여자만 쳐다보지
추한 여자는 쳐다보지도 않는
추하디 추한 인간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자신의 상황이나 성향을
끊임없는 괴변으로 합리화함으로써
자신의 성격을 더욱 추하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네 못난이들은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움을 필요로 해.'
'우리는 쌍둥이 남매야.
내 사랑, 우린 닮았어.
선이 악을 닮듯. 천사가 짐승을 닮듯'

 

에피판의 그런 모습은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아멜리 노통식 공격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나 자신에 대한 공격이었다.

 

그녀는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외쳐대는 내 방어막을 공격해서
그 안에 숨어있는 외모 지상주의의
흔적을 사정없이 공개하려고 하였다.

 
그녀는 숫컷의 본능을 적나라하게 간직한
내 안의 에피판을 찾아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그 공격이 성공한 것일까?
어느새 나는 내 안의 에피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역시, 너는 내 안에 있었구나.
그렇게 추한 모습으로...

 

미안, 그동안 내가 너를 인정하지 않았구나.
이제부터는 인정해 볼께.
그리고 너를 없애도록 노력해 볼께.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아멜리 노통이 내게 건네준
칼은 그녀의 소설 속에서만 사용 가능한 것이 아닐까.

 

5.

아멜리 노통은 나랑 코드가 맞는
인물인 것 같다.

 

나는 그녀의 정상적이지 않는 상황설정이
마음에 들고,
배드엔딩에 가까운 엔딩도 마음에 든다.

 

정확하게 말해서
그녀가 내게 가하는 소설을 통한 공격이 마음에 든다.

나의 방어막을 무너뜨리고
내 안의 악마적 속성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게 하는
그녀의 글은 그 자체로 쾌락을 가져다 준다.

그러니까 나는 아마 아멜리 노통의 글을
끊지 못할 것 같다.

 마약처럼 계속 읽게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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