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1.
전쟁이 지나간 아프가니스탄의 거리.
그 곳은 널려진 건물의 잔해와 함께
찢겨지고 조각난 사람의 시체가
몇분전까지 그들이 이곳에서 인간으로 살았음을
증명하고 있고,
울려퍼지는 비명소리, 울음소리는
이제 그곳이 삶에서 지옥으로 떨어졌음을
다시한번 확인한다.
 
그러나 그곳에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전쟁의 흔적이 지나가도,
절망이 몰아쳐도 그들은 아픔을
꾸역꾸역 삼키며 살아간다.
 
절망이 그들을 삼킬 지라도 
그들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것을
알고 살아간다.
 
<천개의 찬란한 태양>은 이렇듯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폭력 앞에서
무력하게 희생되는
사람들의 삶을
미리암과 라일라라는 두 명의 여성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2.
그녀는 태어나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그녀의 존재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알려지는 순간
그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깨달았고,
그녀의 어머니를 제외한
다른 부인들은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그녀는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버려진 존재였고,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어머니와 함께 외따로 떨어져서 살아가던
그녀는 아버지의 따스한 품을 그리워했다.
 
일주일에 한번 와서 선물과 좋은 말만 해주는 걸로는
그녀에 품에 가득한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채워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어머니 몰래
아버지를 찾아나선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녀를 집에 들여놓지 않고,
그녀는 실망하여 집으로 돌아간다.
 
열다섯살의 치기가 불러일으킨 행동.
이 행동은 그녀를 파멸로 몰고간다.
어머니의 죽음과 뒤이은 아버지집에서의 고독한 생활
그리고 마흔다섯 살의 라시드와의 결혼.
 
그녀에게 남겨진 것은
가부장적 권위주위에 파괴되는 삶 뿐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암.
 
'마리암, 그게 우리 팔자다. 우리 같은 여자들은 그런 거다.
참는 거지. 그것이 우리가 가진 전부다. 알겠느냐?'
 

3.

소련이 지배했었던 한때
일군의 인물들이 서구의 근대적 사고를
여성들에게도 가르친다.

 
그녀는 그 교육의 수혜자였다.
서구적 교육을 받은 그의 아버지는
그녀를 능동적이고, 세상에 이름을 날릴 수 있는
여성으로 키울려고 노력한다.

 
'나는 네가 지금 이걸 이해하고 알았으면 싶다.
결혼은 늦출 수 있지만 교육은 그럴 수 없는 거란다.
너는 아주 영리한 아이야. ...
너는 원한다면 뭐든지 될 수 있어. 나는 알아. ...
여자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면 사회는 성공할 수가 없는 거다.
그럴 수가 없지.'

 

그녀의 어머니는 살아있지만
그녀에게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반군활동을 위해 집을 뛰쳐나간
그녀의 오빠들만 생각하고
그녀는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녀에게는 실제적으로
어머니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는 친구도 있었고,
좋아하는 남자도 있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입술에 미소를 머금게 만드는
그의 이름은 타리크.

 
그러나 소련군이 물러나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내전은
그녀의 삶을 찢어놓기 시작한다.

 
친구들의 죽음. 타리크의 실종.
최종적으로 그녀의 눈앞에서
먼지가 되어버린 그녀의 어머니, 아버지.


그녀는 그렇게 시대의 폭력앞에서
라시드의 첩이 된다.
 
'아마드와 누르는 죽었고, 하시나는 어디로 가고 없고,
기티는 죽었고, 엄마는 죽었고, 아빠도 죽었고,
이제 타리크마저...' 
 

그녀의 이름은 라일라 

4.

구세대를 여성을 대표하는 마리암과
구세대의 가부장적 남성의 대표주자 라시드.
 
신세대 교육을 받고 자란 라일라과 타리크.
 
그 대비되는 두 세대는
마리암과 라일라의 만남으로
새로운 조화의 장을 마련한다.
 
마리암은 라일라의 실제적 어머니 역할을 하고
희생을 통해 라일라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다.
 
구세대의 희생을 통해
신세대는 내일의 살아갈 힘을 얻는다.
라일라는 아프고 힘들더라도
내일을 향해 나아간다.
 
그녀의 뒤에서는
카불의 폐허를 아름답게 비추는
천개의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름답게...
 

“지붕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었네."(P.532)


 

5.
호세이니는 놀라운 작가적 재능으로
현실앞에 파괴된 여성들의 삶을 재현해낸다.
그 앞에서 우리는 알지도 못했고,
별다른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던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삶을 실감나게 느끼게 된다.

그것은 공감으로 이어지며
파괴되고 찢겨진 삶을 살면서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살아가는
그들의 삶에 동화되게 만든다.
 
오직 살아있는 것만이 전부인 그들의 삶.
그것 또한 삶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네들의 삶에서
살아있음 그 자체가 축복임을
다시한번 배운다.
 
그래,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축복이다.
이제 축복을 알았으니
내일을 꿈꾸며 잠에 빠지자.
아마 꿈 속에서 우리를 비추는
천개의 찬란한 태양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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