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원의 정도전의 흔적 지우기가 얼마나 철저한지, 지금까지도 정도전의 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정도전의 신원(명예) 복구가 정도전 사후 약 470년이 지난 고종 때 이루어졌다는 점입니다. 중종 때 기묘사화로 목숨을 잃은 조광조가 30여 년이 지난 뒤인 선조 때 신원이 복구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정도전의 신원 복구가 얼마나 기나긴 시간이 걸린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고종 때의 권력자로 경복궁 중건을 위해서 정도전 신원 복구를 추진한 흥선대원군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정도전의 신원 복구는 조선 시대 내에 이루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도전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정도전의 흔적은 조선 시대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정도전 자신이 마든 궁궐과 전각의 이름에, 한양의 사대문 이름에, 재상의 지위와 역할이 강조되고 왕권 국가이지만 비교적 대신들의 힘이 크고 언관의 활동이 폭넓게 보장된 정치 시스템 속에, 두 차례의 반정으로 임금을 몰아낸 반정 속에서 언뜻언뜻 내비치는 책임정치의 그림자 속에서. 정도전이라는 유령이 조선 시대를 계속 맴돌고 있었던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