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평점 :
3.서영동 이야기-조남주
'가족은 115동 1102호를 떠나지 못했다. 보금자리를 옮긴다는 것은 빠르게 결정해서 금세 실천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이 아니다. 그렇게 시끄러운 윗집과 예민한 아랫집 사이에서 병들어가는 사이 집값은 계속 올랐다. 이사한 지 1년여 만에 시세는 15억이 되었다. 희진은 집이 좋기도 싫기도 했다. 이 집을 가져서 다행이기도 불행이기도 했다. 행복하기도 우울하기도 했다.'(p.208)
가상의 서울 동네인 서영동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린 <서영동 이야기>는 생생히 살아 있습니다. 책 속 이야기가 너무 생생히 살아있고, 현실과 거의 차이가 없어서, 마치 현실의 이야기인 것처럼. 책 속 등장인물들이 내 곁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어쩌면 이들의 이야기는 책을 읽은 이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단적으로 말해 '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이지만 나의 이야기가 되는 이야기로서의 <서영동 이야기>.
이들의 이야기가 현실적인 건, 지금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너무도 잘 그렸기 때문입니다. 부동산에 울고 웃고, 부동산을 통한 금전적 욕망에 불타면서도 동시에 그 욕망 때문에 괴로워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또 거기에는 부동산을 가지지 못한 이의 이야기도 있고, 자식의 교육으로 갈등을 겪는 부모님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무수한 삶의 이야기들은 현실을 살아가는 생생한 우리들의 이야기로서 책을 읽는 내내 독자들의 삶과 하나가 됩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삶과 하나가 되었다고 해서 이 이야기가 완벽하게 나의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닙니다. 동시에 이 이야기들은,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나가, 내 삶 자체를 거리를 두고 객관화해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었던 삶들을 하나의 문학적 작품으로서 만들어서 눈앞에 보여주기에, 나는 내 삶이 될 수도 있었던, 나의 삶과 비슷한 삶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게 만들어 줌으로써. 그래서 나는 내 삶을 다양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뭐가 문제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면서.
삶을 바라보게 하는 문학적 힘을 보여주는 작품인 <서영동 이야기>는 저에게 '핍진성'으로 다가옵니다. 현실성, 사실성을 넘어서 현실과 하나가 되어, 설득할 필요도 없이 알아서 설득이 되는 느낌의 핍진성. 핍진성 가득한 작품으로서 내게 다가온 <서영동 이야기>를 저는 이제 독서모임 책으로 추천할 생각입니다. 이 책의 생생함을 다른 이들과 나누며 삶의 이야기를 더욱 더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