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제안들 31
에두아르 르베 지음, 한국화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3-47.자살-에두아르 르베

 

아 항상 게으름이 문제입니다. 시간이 많을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글을 적어두면 좋으련만. 이놈의 게으름은 할 일을 미루고 또 미루다가 주말에 와서야 글을 쓰게 만듭니다. 일요일날 급하게 허겁지겁 쓰는 것보다 여유롭게 적어나가는 게 훨씬 좋은데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토요일날 글을 써서 다행입니다. 그래도 저번 주보다는 하루 정도 게으름이 줄었네요.^^;;

 

이번에 쓴 글은 <자살>이라는 책에 관한 글입니다. 일단 제목부터 범상치 않아 보입니다. 자살이라. 범상치 않은 제목만큼이나 책의 사연도 심상치 않습니다. 일단 책의 사연부터 한 번 적어볼께요. 책의 저자인 에두아르 르베는 예술가입니다. 화가에서 예술가 활동을 시작한 에두아르 르베는, 자신이 그린 그림들을 불태우고 사진가로 예술장르를 변경합니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불태웠다는 것부터 심상치 않은 에두아르 르베는 자신만의 독특한 개념예술로 이름을 알립니다. 현대예술 전시회를 가서 좌절한 경험이 있는 저는 왠지 개념예술이라는 단어를 보니 왠지 어려울 것 같다는 선입견이 마구 드네요.^^;; 자신만의 개념예술 세계를 만들어가던 에두아르 르베는 20071015일에 자살로 생을 마갑합니다. 그런데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며칠 전에 그는 어떤 편집자에게 <자살>이라는 소설의 원고를 보냅니다. 며칠 뒤에 자살할 사람이 쓴 소설의 내용은 자살한 사람의 삶을 되돌아보는 내용이었습니다. 자살자가 쓴 자살한 사람의 이야기. 뭔가 기이하지 않나요? 어쨌든 이 독특한 사연을 가진 책은 2008년에 굴간됩니다.

 

제 앞에 놓인 <자살>을 들여다봅니다. 자살한 예술가가 자살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로서. 책에는 화자인 가 자살로 죽은 의 이야기를 합니다. 자살에서 시작한 책은 너의 삶의 묘사로 이어집니다. 죽음에서 생으로의 이어짐. 일반적으로 삶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게 삶이라면 이 소설은 반대죠. 죽음에서 삶으로 이어지니까요. 어쨌든 자살에서 시작한 너의 삶의 묘사는 일관성도 없고, 인과도 없고, 시간의 선후관계도 없이 지속적인 삶의 나열만 있습니다. 삶에서 겪은 에피소드들, 너의 성격적인 특징, 취향, 인간관계,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들... 어떤 특정한 구조라든지 특정한 스토리텔링 없는 무차별적인 삶의 나열 끝에 남겨진 자들의 슬픔과 삶을 응축한 시가 나오며 소설은 끝납니다.

 

일단 다 읽었으니 책을 덮습니다. 생각해보면 이 소설은 죽음에서 시작하여 삶으로 갔다 다시 죽음으로 끝을 맺습니다. 다시 한 번 책을 펼쳐봅니다. 자살한 저자의 삶을 반영한 분신 같은 너의 삶이 죽음에서 다시 삶으로 태어났다가 죽음으로 돌아갑니다. 이걸 몇 번 반복해보고 무언가 느껴졌습니다. <자살>을 읽은 이들은, 저자의 상상력을 통해서 특정한 삶과 죽음을 무한반복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마치 니체의 영원회귀의 문학적 형상화 같은 이 소설을 보면서 에두아르 르베는 죽었지만, 그의 작품은 남아서 우리 곁에서 그의 삶과 죽음을 문학적으로 영원회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살>을 읽는 무수한 독자들을 통해서. 그는 죽었지만 죽지 않았습니다. <자살>이라는 작품이 있고, 그걸 읽는 독자들이 있으니까요. 동시에 그는 죽다 살았다, 살았다 죽다를 반복하며 삶과 죽음의 영속성을 독자들에게 알려줍니다. 우리네 인간은 생에서 죽음으로 나아가는 존재이니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