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이름은 별보다 많다 - 김창규 소설집
김창규 지음 / 아작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23-40.우리의 이름은 별보다 많다-김창규

 

1.

제가 처음 SF를 읽기 시작했을 때, SF에서 우주비행을 할 때 인류가 주로 사용한 기술은 동면이었습니다. 동면을 이용해서 장시간의 시간을 견뎌내는 우주 이야기가 많이 보였다는 말이죠. 그런데 최근의 경향은 조금 다릅니다. 이제는 동면보다는, 인간의 뇌를 스캔해서 만들어진 인간의 정신 데이터를 다른 몸이나 의체같은 유기체 아닌 물질에 이식하는 방식이 많이 쓰이는 것 같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는 기나긴 우주 비행의 시간을 견뎌낼 수 없다는 현실적인 인식 때문인지 동면의 사용 빈도수는 줄어드는 것 같아요.

 

2.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듭니다. 유물론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동면이 아닌 뇌 스캔 방식의 우주비행은 유물론의 어떤 극한을 보여준다는. 과거의 동면 기술은 그래도 인간의 몸을 믿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우리 몸을 가지고 충분히 우주비행이 가능하고, 인간의 자아는 그 기나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일관성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뇌 스캔 기술을 쓰면 인간의 몸은 단순한 재료에 불과하게 됩니다. 몸조차 단순하게 쓰고 버리는 도구가 되는 것이죠. 뇌를 스캔해서 구성된 정신이 이식되는 도구로서의 몸은, 유기체가 아니라도 상관없습니다. 기계에도 이식 가능해지고, 온라인 공간 상의 프로그램에 머물러도 됩니다. 이 기술에서는 인간의 정신도 복제 가능하고, 어떤 물질에든 이식이 가능한 물질적인 것이고, 몸도 소모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3.

<우리의 이름은 별보다 많다>는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아무리 뇌 스캔을 통해서 동일한 정신을 몸에 이식한다고 해도 그때의 나를 그 이전의 나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정체성의 문제에서 본다면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책에서는 여기에 관해서는 정확하게 무슨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책에 담긴 내용을 봤을 때 저자인 김창규는 동일한 자아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뇌 스캔을 통해서 가상현실에 자아를 재구성하면 감정이 사라진다든지 무언가 달라진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서.

 

4.

1993년부터 SF를 쓰기 시작하며 30년의 기간동안 꾸준히 척박한 한국 SF 환경에서 글을 써온 김창규 작가의 SF 단편 모음집인 <우리의 이름은 별보다 많다>, 위에서 말한 문학적인 흐름에서 인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상에 의한 기술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작품들 각자는 SF의 특성을 잘 보여주면서도 장르문학의 재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기술과 과학과 사상과 스토리텔링이 맞물려 돌아가는 SF 단편 모음집에서 한국에서 꾸준히 SF를 써온 작가의 힘 같은 걸 느꼈습니다. 아마도 이런 힘 같은 것이 밑바탕이 되어 지금의 한국 SF의 융성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런 면에서 저 같이 SF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오는 작품들을 꾸준히 읽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네요. 그것만이 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