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흑역사 -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톰 필립스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1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023-27.인간의 흑역사-톰 필립스

 

책을 읽는 내내 계속 킥킥 웃음이 흘러나왔습니다. 이것이 영국식 블랙 유머의 힘인가. 책을 다 읽고 덮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참으로 유머러스한 책이라고. 그런데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저는 왜 등골이 서늘해졌을까요?

 

먼저 책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런던에서 활동하는 언론인이자 작가인 저자 톰 필립스는 <인간의 흑역사>를 통해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인간 실패의 역사를 되돌아봅니다. 저자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살아가는 한,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한, 실패를 반복하고, 어리석은 짓을 되풀이해서 저지른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왜 인간은 반복적으로 실패를 반복하는가? 저자는 책을 통해 그것이 진화의 결과로서 빚어진 우리 몸의 메커니즘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자는 진화가 단기적인 생존은 이루어내지만, 장기적인 삶의 틀을 만들어내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합니다. 지금 당장 살아남은 방식이 반드시 미래에도 생존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거니와 거시적인 틀에서의 삶의 틀을 좋게 만든다고 할 수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진화는 우리에게 그때그때 살아남은 것들을 전해주지만, 큰 틀에서 삶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저자는 우리 뇌가 그때그때 살아남은 진화과정이 전해져 합해진 것으로서 얼마나 많은 오류를 저지르는지 알려줍니다. 우선 우리 뇌는 세상 곳곳에서 패턴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자신들에게 익숙한 패턴들을 찾아냅니다. 달에서 인간의 모습을 닮은 형상을 보고, 바위나 산의 모습을 자신이 아는 형상으로 인식하듯이. 뿐만 아니라 인간의 뇌는 제일 처음 얻은 정보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결정을 내리거나 제일 쉽게 떠오르는 정보를 기준으로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 뇌는 우리 자신의 오류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고, 그것이 잘못이라는 사실 자체를 거부합니다. 확증 편향에 빠져 남들의 올바른 지적이나 눈앞에 있는 명확한 오류 제시에도 자신의 사고 방식을 바꾸지 않구요. 집단으로서 사고할 때는 오류를 저지를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도 인간의 특성입니다. 현실이 아니라 자신의 소망을 담아서 미래를 보기도 하고, 탐욕과 이기심과 편견에 물든 채 행동을 하는 게 또 인간입니다. 이 모든 게 모여서 인간 삶을 형성하기 때문에 인간은 지속적으로 실수를 저지르고 어리석은 행동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 이제 저의 등골이 서늘한 이유가 나옵니다. 저는 책에 나오는 유머러스한 내용을 웃으며 읽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나니 무언가 다른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책에 나오는 인간들의 실수를 재미있다고 웃었죠. 하지만 저들과 저는 얼마나 다른 존재일까요? 저도 인간이고, 책에 나오는 저자의 말대로라면 진화 과정에서 생겨난 뇌의 오류 메커니즘을 저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데, 저라도 실수를 안 하는 게 가능할까요? 책에 나오는 이들처럼 거대한 규모나 역사에 기록된 실수를 하는 건 아닐지라도, 저도 저 나름의 작은 실수들을 반복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저는 웃었지만, 저의 웃음은 저 자신에게 행해진 웃음이었던 것이죠. 왜냐하면 책 속 인물들과 저는, 실수를 반복한다는 측면에서 다를 게 없는 존재였던 것이니까요. 이걸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했던 악의 평범성개념에 빗대어 어리석음의 평범성이라는 말로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니까요. 그래서 <인간의 흑역사>는 저에게 인간이라면 어리석음의 평범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유머러스하고 재밌으면서 가슴 서늘한 책으로 남아 있습니다. 저가 저 자신을 보고 웃게 만들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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