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1
페터 한트케 지음,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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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6.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페터 한트케

 

책을 덮으며 생각합니다. 페터 한트케가 생각하는 모험은 제가 생각하는 모험과 다르다고. 저에게 모험은 낭만적이고 열정 가득하고 무언가 색다른 느낌의 단어입니다. 어쩌면 제가 어릴 때 봤던 <원피스>라는 일본 만화의 영향이 아직도 저에게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원피스> 속 모험은 낭만적이고 열정적이고 화려하며 일상과 다른 삶의 방식이니까요.

 

그에 비해 페터 한트케에게 모험은 <원피스>에서 말하는 모험과 의미가 다른 것 같습니다. <어두운 밤 나는 적막한 집을 나섰다>을 보면 그걸 알 수 있습니다. 이 소설은 탁스함이라는 도시의 약사가 겪은 모험을 그린 작품입니다. 여기서 탁스함의 약사가 겪는 모험은 제가 생각하는 원피스식 모험과 다릅니다. 그건 섬세하고 세밀한 묘사로서 기록된 자의식 가득한 내면으로의 모험이자 낯선 이들과 낯선 장소를 만나면서 변화를 겪는 이의 여정이 담긴 모험입니다. 이런 모험을 예술적이고 문학적인 모험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작가가 자신만의 문장과 표현으로서 써내려간 아름다운 문학적인 모험.

 

분명 페터 한트케식 모험은 현대의 다양한 동영상 컨텐츠에서 나오는 모험과는 그 궤를 달리합니다. 그건 스펙타클하거나 리드미컬하나 스피디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강렬한 액션이나 일상을 초월하는 환상은 나오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대신 자신의 내면을 섬세하게 파고드는 예술가의 고백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낯선 장소와 낯선 이들을 꼼꼼하게 세밀하고 관찰하고 묘사하는 작가의 시선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빠르지 않지만 변화를 받아들이며 자기 자신을 바꾸려는 한 인간의 의지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일상적이지 않지만 예술적이고 문학적이며 색다른 표현과 문장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더해져 페트케식 모험이 하나의 소설로서 탄생하고, 독자는 그 소설을 페터 한트케식 모험으로 받아들인 채 읽어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독자는 책을 펼치고 읽었기 때문이죠.

 

도둑질하는 아들을 내쫓고, 버섯에 미쳐서 아내와 멀어진 채 고립된 삶을 살다 모험을 한 탁스함의 약사는 변화를 겪고 고립에서 탈피합니다. 자기 자신의 삶에 갇혀 살아가던 그는 일상으로 돌아와서, 다른 이들의 삶에 귀기울이고, 그들의 삶에 자신을 적응해가면서 살아갑니다. 모험이 준 변화가 자기 자신을 바꾼 것이죠. 어쩌면 그 변화는 독자들에게 영향을 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탁스함의 약사가 겪는 모험은, 책을 읽은 독자가 독서를 통해 경험한 모험이라고도 할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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