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 열린책들 세계문학 155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권오숙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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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9.맥베스-윌리엄 셰익스피어

 

인생은 걸어다니는 그림자일 뿐.

무대에서 잠시 거들먹거리고 종종거리고 돌아다니지만얼마 안 가 잊히고 마는 처량한 배우일 뿐.

떠들썩하고 분노 또한 대단하지만,

바보 천치들이 지껄이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이야기. (p.137)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가장 분량이 많고 모호하고 불확실합니다. <리어 왕>4대 비극 중 가장 어둡고 슬픕니다. <오셀로>4대 비극 중 인간의 정념에 가장 집중합니다. <맥베스>4대 비극 중 가장 전개가 빠릅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이야기할 책은 4대 비극 중 가장 전개가 빠르다고 여겨지는 <맥베스>입니다.

 

텍스트를 보는 다양한 방식이 있겠지만, 저는 <맥베스>를 주인공인 맥베스의 심리 변화를 통해 들여다봅니다. 우선 맥베스는 공을 세워 기뻐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다음으로 맥베스는 세 마녀를 만나 그 자신이 왕이 된다는 말을 듣습니다. 마치 악마의 유혹 같은 이 말은 맥베스에게 의혹을 안깁니다. 진짜 내가 왕이 될 수 있을까. 의심하는 맥베스에게 현재의 왕을 죽일 기회가 옵니다. 맥베스는 주저하죠. 하지만 아내가 맥베스를 몰아붙이며 맥베스는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됩니다. 그 이후로는 그 이전의 인간 맥베스가 아닌 악당 맥베스, 폭군 맥베스, 권력에 집착하는 맥베스의 영역입니다. 이 상태에서 맥베스에게 의심이나 주저는 없습니다. 그는 권력을 지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존재로서 행동합니다. 자신이 죽인 인물의 유령이 보이면서 맥베스에게 슬슬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맥베스는 애써 무시합니다. 자신에게 들이닥칠 파멸의 그림자를 무시하지만 현실은 그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맥베스는 현실 부정 끝에 자신이 부정하던 현실에게 따라잡혀 죽음을 맞습니다.

 

이건 안정된 지위를 누리다 변화를 겪는 과정과 이어집니다.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던 한 인물이 세 마녀를 만나서 동요되고, 변화하게 됩니다. 이 때 세 마녀가 맥베스에가 불어넣은 건 야망이라는 개념입니다. 자신만의 삶에 머무르던 맥베스는 세 마녀가 불어넣은 야망이라는 마법에 홀려 위로 날아오르려 합니다. 처음에는 의심하죠. 내가 올라갈 수 있을까? 저 위로 날아오르는 게 가능할까? 주저할 때 아내는 확신을 심어줍니다. 그래 해보자. 해보는 거야. 도덕이니 윤리니 하는 것들을 버리고 그는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왕을 죽이고 자신이 왕의 자리에 오릅니다. 위로 올라왔으니 그는 다시는 내려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내려 가기 싫으니 수단방법 안 가리고 위의 자리를 지키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그의 행동이 그의 파멸을 초래합니다. 그의 파렴치함과 부도덕함과 폭력성에 반발한 이들이 그를 몰아내려고 합니다. 맥베스는 주변에서 들리는 경고음에도 불구하도 눈을 감습니다. 현실에 눈을 감고 현실을 보지 않습니다. 보지 않으면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그러나 눈을 감는다고 존재하는 현실이 사라집니까? 현실은 사라지지 않고 맥베스의 목을 서서히 조입니다. 아내의 죽음 같은 파멸의 목소리가 들리는데도 그는 멈출 수 없죠. 위로 올라와서 내려갈 수 없으니까요. 결론은 그의 파멸이자 죽음입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결말을 보지 않으면 세 마녀의 목소리는 맥베스에게 축복처럼 보입니다. 결말을 보고나니 세 마녀의 목소리는 축복이 아닙니다. 그건 저주죠. 너는 왕이 된 다음에 죽을 거라는 저주. 근데 그 저주의 다른 이름은 야망입니다. 세 마녀가 불어넣은 야망을 다른 말로 하면 파멸입니다. 야망=파멸. 축복이 저주가 되고, 야망이 파멸이 되는 마법. 저에게 <맥베스>는 비극의 마법성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사랑하면 죽게 되고, 올라가면 내려오고, 최상의 상태를 겪은 뒤에 파멸하는 마법을 가진 문학장르가 비극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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