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감지 마라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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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눈감지 마라-이기호

 

이기호 작가의 <눈감지 마라>는 짧은 소설들 모음집입니다. 짧은 소설들 모음집답게 수십 개의 단편이 되지 못한 짧은 소설들이 모여 있습니다. 일반적인 짧은 소설들 모음집이라면 각기 다른 짧은 이야기들이 모여 있겠지만, 이 책은 전진만박정용이라는 두 사람의 삶의 이야기들이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구성입니다. 두 사람의 삶의 이야기로서 커다란 하나의 소설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각각의 소설들은 각기 다른 구성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전해준다는 말입니다.

 

소설들 전반에 깔린 건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삶의 비애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비극적이고 슬픈 분위기같겠지만, 이기호 작가의 특성상 소설은 슬픔이 가득한 무거운 분위기로 흐르지 않습니다. 이기호 작가 특유의 유머러스함과 경쾌한 느낌은 희극적인 어조를 가져오며 소설 전반에 깔린 비극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져 희비극적인 느낌을 불러 일으킵니다.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우는, 그런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인 느낌.

 

그러면 왜 이 소설들은 희비극적인 느낌을 가지는 걸까요? 그건 전진만박정용이라는 두 주인공의 삶 자체가 가진 구조적인 요소 때문입니다. 두 사람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공부도 잘하지 못해 지방대에 들어갔고, 지방대 졸업 뒤에는 아르바이트와 파트 타임을 전전하며 살아갑니다. 사는 곳도 보증금 없는 원룸에 함께 월세를 보태며 살고 있습니다. 당연히 그들 주위에서 마주치는 이들은 돈 없고 힘 없는 이들이고, 그들과 함께하는 그들의 삶에는 어찌할 수 없는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들은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도 쉽게 할 수 없고,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삶 속에서 그저 하루하루 힘겹게 살아갑니다. 기본적으로 가난이 그들을 힘겹게 하지만, 가난이 불러 일으킨 다른 삶의 요소들이 더해져 그들은 더욱더 힘겨워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빡빡해지는 환경이 그들의 삶을 비극으로 몰아간다는 말입니다. 일을 하다 벌어지는 사고도, 심지어 죽음마저도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지나갑니다. 마지막에 진만이 떠나간 정용의 삶에 젊은 청년이 등장하지만, 그는 이름만 다른 또다른 진만으로서 정용과 함께 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슬프긴 했지만 이기호 소설 특유의 희극적인 느낌이 비극을 덜어주면서 슬프면서도 기쁜 느낌으로, 슬픔이 덜어지는 식으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읽어나가다 보니, 삶의 비극에 비극이 겹쳐지면서 점점 슬픔이 커져가는 것이 아닙니까? 읽다가 더해지는 슬픔에 어느 순간 슬픔이 빵 터지며 지독한 슬픔이 들이닥쳤습니다. 어릴 때부터 이어진 가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도 없는 삶, 그러면서도 울고 웃으며, 때로는 다른 가난한 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때로는 그들과 다투기도 하고, 가난한 삶의 구조이 자신을 옥죄는 삶의 비극의 끝에 결국 닥친 비극까지. 어찌할 수 없는 한국적인 삶의 비극 앞에서 저의 슬프고도 슬플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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