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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ㅣ 쏜살 문고
아니 에르노 지음, 윤석헌 옮김 / 민음사 / 2019년 11월
평점 :
사건-아니 에르노
이 책은 아니 에르노가 겪은 ‘사건’을 기록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사건이라면 세상 어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사건의 발생 확률이나 그것의 실제 체험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그러나 아니 에르노가 겪은 사건은 세상의 절반은 겪을 수 없는, 특정 성에 속하는 이들만 겪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임신 중절이라는 이름의 사건이니까요.
중년의 여성 아니 에르노는 감추어 두었던 과거의 사건을 회상하기 시작합니다. 20대의 젊은 시절에 찾아온 불의의 임신. 삶에 낯선 손님처럼 덜컥 찾아온 임신 앞에 젊은 아니 에르노는 당황합니다. 아니 에르노의 삶에 임신이라는 상황을 만들어낸 상대방 남성도 당황하고 불안해하며 책임을 회피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독실한 가톨릭교도인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죠. 당황하고 불안하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아니 에르노는 임신 중절을 결정합니다. 1960년대 프랑스에서 임신중절은 불법으로 법적인 처벌을 받았으며, 사회적인 인식도 좋지 않았습니다. 절친한 친구는 그것에 대해 알고 싶지 않다고 했고, 자신을 도울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남성은 도움을 요청하는 아니 에르노를 돕지 않고 이용하려고만 합니다. 의사들은 임신 중절을 거부합니다. 누구도 그녀를 도울 수 없습니다. 또한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힘듭니다. 아니 에르노는 세상 앞에 오롯이 혼자로 서서 임신중절이라는 파고를 겪어내야 합니다. 혼자서 겪는 시련 앞에서 아니 에르노의 개인적인 사건은, 세상의 여성들이 겪었던, 겪고 있는, 겪을 수 있는 보편적인 사건의 의미를 획득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여성들과 이어지면서.
불안, 혼란, 고통, 고독 속에서 헤매던 아니 에르노 앞에 구원의 손길이 내려옵니다. 아니 에르노처럼 혼자서 임신 중절을 경험한 다른 한 여성이 아니 에르노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를 돕게 됩니다. 자신과 다른 타인이지만, 임신중절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한 여성의 도움으로 아니 에르노는 임신중절을 시도합니다. 그 과정은 혹독하고 괴로우며 힘겹습니다. 여성으로서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최악의 경험을 하면서 아니 에르노는 힘겹게 임신중절을 하게 됩니다. 다시는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힘겨운 경험을 겪은 아니 에르노는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이 경험을 감추어두게 됩니다. 그리고 상당한 시간이 지나 중년의 나이가 되어서야 마음 깊은 곳에서 꺼내어 글로 씁니다. 때가 되었다는 듯이, 이제는 글로 써도 괜찮다는 듯이.
짧은 내용이지만 이 책을 읽는 경험은 힘겹습니다. 고독하고 혼란스러우며 고통스럽고 불안한 작가 개인의 내밀한 경험이 페이지마다에 묻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는다는 건, 그 고독하고 불안하며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작가의 경험과 함께 한다는 의미입니다. 함께 불안하고 고독하며 고통스럽고 혼란스럽기 때문에 생기는 정서적인 부담감이 독자에게 생겨난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책읽기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세상 어디에선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을, 세상 누군가는 겪을 수 있는 일을 들여다보는 걸 포기한다는 건, 독자로서의 직무유기이자 책임방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건>을 읽기 전이라면 상관없습니다. 읽기 전이라면 아무 의미 없는 사건일 테니까요. 하지만 읽은 뒤라면, 읽고 있는 중이라면, 읽기를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사건>을 읽었다는 ‘사건’을 경험했기 때문에 되돌릴 수 없는 겁니다. 독자는 사건을 겪은 저자와 함께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같은 인간으로서, 혹은 조건이 같다면 같은 여성으로서. 이거야말로 <사건>이 독자에게 선사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