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문제다. 그녀는 철저한 속물이 되지도 못하고, 반대인 낭만의 길로 가지도 못한다. 그녀는 속물과 낭만주의자의 그 어디 쯤에서 어정쩡하게 머문 채, 속물과 낭만 사이를 헤매며 실패의 구렁텅이로 빠져든다.
내가 그녀에게 분노했던 건, 그녀의 모습이 나의 모습과 겹쳐지기 때문이다. 나도 릴리와 같다. 속물적인 생각을 품고 있으면서, 철저하게 속물적이고 계산적인 모습을 보이지도 못하고, 반대로 낭만과 이상의 길로는 용기가 없어 쉽게 나아가지 못한다. 그래서 나도 릴리처럼, 속물과 낭만의 그 어디쯤엔가 어정쩡하게 위치한 채, 그 무엇도 아닌 삶을 살고 있다. 나의 부정적인 모습을 릴리가 보여 주기 때문에 나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