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당 밀리언셀러 클럽 147
야쿠마루 가쿠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악당-야쿠마루 가쿠

 

*스포일러 있으니 읽을 때 주의해주세요.^^;;

 

 

<악당>은 아주 쉽게 요약이 가능한 책이다. 범죄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 가족인 주인공의 성장기. 그러나 이건 일반화의 폭력이다. 아니, 어떻게 보면 이건 모욕이다. 성장이라는 말로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삶과 심정의 변화를 단순하게 요약해버리는 게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겪어야 했던 무수한 고뇌, 범죄로 누나를 잃은 삶의 고통과 정서적인 불안정, 책 속에 등장하는 사건들을 겪으면서 변화해나가는 삶의 양상들을 단지 성장이라는 말로 요약해버린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 아니, 참을 수 없다. 성장이라는 말로 이 소설을 요약해버리려 했던 나의 오만함과 무심함을. 책 속에 나오는 범죄를 저지른 악당들과 비견할 수는 없겠지만, 너무도 쉽게 책을 요약해버리려던 나의 생각은, 언어적인 의미에서는 악당들의 사고와 다를 바 없다고 할 수 있으리라.

 

 

내가 나의 무심함을 쉽게 용서할 수 없는 건, 이 책에 담겨 있는 정서적인 에너지가 나를 건드린 것도 한 몫 했다. 범죄로 누나를 잃은 주인공의 삶도 그렇지만, 탐정일을 하는 주인공이 마주치는 인물들의 기구한 삶과 이야기가 간직한 감정적인 에너지도 엄청나다. 하나같이 어찌나 기구한지. 그러나 모든 범죄가 범죄를 겪은 이들에게는 특별하다고 한다면, 범죄를 만난 이들의 삶을 반드시 기구하다는 말로만 표현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자신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범죄를 마주쳤다는 것이 특별함이라고 한다면, 그들의 삶은 각각의 삶으로서는 특별함이 맞다. 동시에 저마다의 특별함을 간직한 그들의 삶은, 범죄와의 만났던 사람들의 일반론에도 포함된다. 그들은 특별하지만 일반적이다. 범죄와 만난 이들로서 일반적이지만 또 개체의 삶으로서 특별하다. 특별성과 일반성이 어우러진 그들의 삶은, 범죄라는 특성 때문에 엄청난 정서적 에너지를 품을 수 밖에 없다. 그 에너지를 읽으면서 마주쳤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삶이 뿜어내는 에너지에 휘둘릴 수 밖에 없었다. 용서라는 말로 예를 들어보자. '범죄를 저지른 가해지를 용서한다'는 말은 너무도 힘들지만 그 말 자체는 쉬운 말이다. 하지만 이걸 세밀하게 파고들어가보자. 용서가 어디 쉬운가. 자기 가족을 죽인 사람을 용서한다고? 용서가 가능하다고? 이게 가능한가? 그러나 언어는 삶의 세밀함을 포용하지 못한 채, '용서한다'라는 말로서만 표현될 뿐이다. 여기에 피해자 가족의 엄청난 고뇌와 삶의 변화가 포함될 여지는 없다. 가족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떠나간 가족을 얼마나 그리워했을까. 살아 있었다면 다시 만날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고, 싸울 수 있고, 웃을 수 있는데 그걸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이걸 용서할 수 있다고? 이걸 용서하려면, 용서라는 영역에 도달하려면, 어떤 경험을 해야하는걸까. 분명한 건, 용서를 하려면 일반적인 걸로는 도달할 수 없는 무언가에 닿아야 했다는 점이다. 그 무언가에 닿아야만 가능한 게 용서가 아닐까. 용서를 해본적 없는 범인인 내가 추리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다. <악당>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그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성장을 거부한다. 아니 과거에 범죄가 저지른 상처에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벗어나지 못한다. 그가 성장에 도달하는 건, 그가 원했던 것이 아니라, 그가 마주한 사연이, 삶이 그를 성숙에 이르게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단순히 성숙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언어가 가진 비극이다. 소설을 일반화할 때 생겨나는, 단순성이 가진 비극 앞에서 나의 <악당> 읽기는 아쉬움에 머무른다. 그 지난하고 복잡하며 엄청난 삶과 감정의 에너지를 가진 과정이 다 사라져버리니까. 나는 그래서 '성숙'이라는 말로 단순하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내 상황이 아쉽고도 또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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