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31.공리주의-존 스튜어트 밀

총페이지:216p

읽은 기간:2021.4.27~2021.4.28

읽은 책에 대하여:

해설을 보니, 이 책이 어렵다고 쓰여 있었다. 인터넷에서 서평을 찾아보니, 또 이 책이 어렵다고 쓰여 있었다. 흠... 내가 이 사람들과 똑같은 책을 읽은 게 맞은 것일까? 왜 나는 어렵지도 않고, 술술 익혔지. 이거 뭔가 이상한데...

이상함을 파고들어가보니 무언가가 나왔다. 나는 깨달았다. 그 무언가 때문에 내가 <공리주의>를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구나.

그 무언가는 무엇일까? 그건 내가 이전에 읽은 책과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순수이성비판>,<존재와 시간> 같은. 나는 그 책들을 읽기 전에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어렵다고 하지만 충분히 읽을 수 있고 해석도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런데 막상 책을 읽어보니 예상과는 달랐다. 분명히 나는 그 책들을 읽었다. 하지만 그냥 읽기만 했다. 눈 앞에서 한글이 문장을 만들고, 문장이 모여서 문단을 만들고, 문단이 모여서 책의 한 파트를 이루고, 그 파트들이 모여 하나의 책을 만들면서. 그러나 내가 파악한 것은 '검은 것은 글씨요, 흰 것은 종이라' 정도였다. 도대체 책에서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히 내가 한글을 읽은 게 맞는데 왜 해석이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는 것인지. 해석도 안 되고 이해도 안 되는데 나는 왜 이 이 책을 읽는다고 앉아 있는지. 회의감도 들고, 나의 독해력의 부족함에 분노를 느꼈다. 책을 읽는 시간인데, 왜 암호해독 시간처럼 느껴지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고. '읽기의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보면 단테가 지옥문에서 이런 구절을 보는 장면이 있다.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이 문장은 내가 위의 책들을 읽으면서 느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 그 책들을 읽으면서 나는 독해와 이해의 희망을 모두 버렸다.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 되니까. 해설서라도 읽어서 내용을 대충 파악했지, 만약 해설서라도 읽지 않았다면, 나는 고전읽기를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내가 그 책들을 읽고 느낀 무력감은 컸다. 독서의 희망을 잃게 만들고, 책읽기의 무력감을 이 정도로 강하게 들게 했다면, 그게 읽기의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단테처럼, 나는 포기하지 않고 '읽기의 지옥'을 돌파했다. 해설서라는 베르길리우스의 도움을 받아서. 해설서 읽기에 대한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해설서는 내가 '읽기의 지옥'을 건너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게 사실이다.

'읽기의 지옥'을 돌파한 내게 <공리주의>는 천국에 가까웠다. 일단 글을 읽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저자의 의도도 보였다. 이해가 안 되는 문장이나 표현도 거의 없었다. 읽을 수 있고, 이해도 되고, 공리주의가 무엇인지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게 '읽기의 천국'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순수이성비판>이나 <존재와 시간> 읽기에 비하면, <공리주의> 읽기는 내게 행복한 순간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존 스튜어트 밀이 '공리주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 것이 행복이었지. 비록 <공리주의>를 읽으며 내가 느낀 행복이, 전체 사회의 행복을 늘리는 것에 기여하는지 알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행복했다는 그 사실 자체가 아니겠는가. 그 사실만으로도 내가 이 책을 읽은 값은 충분히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