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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불평등 기원론 ㅣ 펭귄클래식 85
장 자크 루소 지음, 김중현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8329.인간 불평등 기원론-루소
*서평을 쓰기 전에 하는 말.
두 달 넘게 쉰 이후에 읽은 책 서평을 쓰면서, 책 제목 옆에 계속 숫자를 붙였습니다. 이게 제가 미쳐서 제 멋대로 붙인 게 아닙니다.^^;; 제목 옆에 붙인 숫자가 나타낸 것은 제가 책을 읽은 횟수입니다. 2를 붙여다는 건, 제가 그 책을 두 번 읽었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두 달 넘어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이미 읽었던 책들을 계속 읽어왔습니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 옆에 숫자가 붙지 않았다는 건, 제가 처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제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만난 재독을 하지 않은 책입니다. 저와 이 책의 만남은 지금에서야 처음으로 이루어졌다는 말입니다.
-마르크스 이전에 루소가 있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루소가 있은 뒤에 마르크스가 있었다'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둘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제가 보기에 루소는 마르크스의 조상격인 비판적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루소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 있습니다. 그런데 묘합니다. <자본론> 관련된 책들을 열광적으로 읽은 뒤에, 더 이상 <자본론> 관련 책들이 아닌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이 <자본론>의 조상 같은 느낌이 드니까요. 지금 저의 독서 상황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본론>을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자본론>을 벗어나든, 벗어나지 않았든, 저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읽었습니다. 읽으면서도 느꼈고, 읽은 뒤에도 머릿속에 들었던 생각이지만,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마르크스의 사상과 <자본론>과 비슷하면서도 다릅니다. 자연상태에서 평등하고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인간이 문명사회로 삶의 형태를 변화시키고, 소유권과 사유재산제를 등장시키면서 불평등해지고, 가진 자들이 자신의 재산을 유지하고 안정화시키 위해 법과 제도를 만들었다는 루소의 주장은, 마르크스의 주장에 이어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 급진적인 사고와 태도도 비슷하고요. <자본론>에 나오는 사고실험 같은 경우도, 루소가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이미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유롭고 독립적이었던 자연인이 문명인이 되어 불평등해지고 예속 관계의 노예가 되었다는 주장은, 마르크스 말하는 자유롭고 독립적이었던 수공업자가 공장제 대기업의 등장으로 자본가에게 예속된 임금 노동자가 되었다는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여기까지는 정말 닮아보입니다.
그러나 둘은 다릅니다. 전제군주제에 대한 태도가 대표적입니다. 마르크스는 전제군주제는 거의 언급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가 힘을 쥐고 휘두르는 자본주의의 정치사회적인 구조에 대해서 비판의 칼을 겨눕니다. 반대로 루소는 불평등의 최후 지점으로서 전제군주제를 언급하면서 비판하고, 자연인인 인류가 그 단계에서 최종적으로 타락했다며, 거기까지 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둘의 결정적인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의 인간입니다. 마르크스는 역사적으로 절대왕정의 몰락을 지켜본 인물로서, 왕정의 힘보다는 자본가의 힘이 강력해진 시대를 살았던 인물입니다. 결론적으로 마르크스는 19세기의 인간이죠. 그에 비해 루소는 프랑스 대혁명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절대왕정이 힘을 발휘하던 시대의 인간으로서 절대왕정이 무너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절대왕정 같은 전제군주제의 힘을 강하게 표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는 18세기의 인간이니까요. 하지만 사상사적으로 봤을 때, 앞에서도 말했지만 루소 없이는 우리가 아는 마르크스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도도하게 흘러가는 비판적 사고의 흐름에서, 루소는 앞선 흐름을 만들어낸 이니까요. 프랑스 대혁명으로 이어지는 그 사고의 흐름은 19세기의 비판적 사고로 이어지고, 그 세례를 받은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의 뒤를 이어 마르크스가 등장하는 것이니까요. 물론 헤겔이나 포이어바흐를 빼고 마르크스 사상을 말할 수 없긴 하지만, 급진적인 사고의 흐름에서 루소가 마르크스에게 끼친 영향력은 지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합니다. 어찌되었든 루소라는 급진적인 사고의 앞선 흐름을 읽었으니, <자본론>으로 복귀할 시간이네요. 이제 저는 <자본론>의 세계로 다시 들어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