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와 시간 까치글방 138
마르틴 하이데거 지음, 이기상 옮김 / 까치 / 1998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8206.존재와 시간-하이데거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라는 낱말로 본디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면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새롭게 제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존재"라는 표현을 이해하지 못해서 당혹스러움에라도 빠져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우선 무엇보다도 다시금 이 물음의 의미에 대한 이해를 일깨워야 할 필요가 있다. "존재"의 의미에 대한 물음을 구체적으로 정리작업하는 일이 이 책이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을 모든 개개 존재이해 일반의 가능적 지평으로 해석하는 것이 이 책의 잠정적인 목표이다.(13)

곰곰히 책을 들여다봅니다. '현존재는 오히려 그 존재자에게 그 존재함에서 바로 이 존재함 자체가 문제가 된다는 그점으로 존재론적으로 뛰어나다.' 음... 다시 들여다봅니다. '존재이해는 그 자체가 곧 현존재의 규정성의 하나이다. 현존재의 존재적인 뛰어남은 현존재가 존재론적으로 존재한다는 거기에 있다.' 아... 다시, 또다시 들여다봅니다. '현존재의 '존재론적으로-존재함'은 존재론 이전의 그것이라고 지칭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예컨대 단순히 '존재론적으로-존재하는' 정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이해하는 방식으로 존재함을 의미한다.' 하... 저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도대체 이 책은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이미 <순수이성비판>으로 단련된 저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결코 독서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읽어나갈 뿐.

'만일 얼핏 존재론적으로 순수 눈앞에 있음과 가까운 듯이 보이는 이 일상적인 서로 함께 있음의 존재가 이미 이러한 눈앞에 있음과 원칙적으로 상이하다면, 본래적인 자기의 존재는 더더욱 눈앞에 있음으로서, 주체의 예외적 상태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질적으로 실존범주의 하나로서의 그들의 실존적인 변양태의 하나이다.

그렇다면 본래적으로 실존하는 자기의 동일함은 체험의 다양성 속에서도 자신을 견지하는 자아의 동일성과는 존재론적으로 하나의 심연에 의해서 갈라져 있는 것이다.'

어차피 이해는 포기했습니다. 그냥 읽고 또 읽으며 페이지를 넘기는 것에 만족합니다. 이해가 안 되도, 무슨 말인지 몰라도 읽고 또 읽다보니 결국 다 읽어냈습니다. 한번 했으니 두 번 세번은 쉬운 법이죠. 사실 두 번, 세 번, 이런 읽기를 계속하다보니 익숙해지네요. 그래도 뇌에 전해지는 무력감과 읽을 때의 고통은 피할 수가 없네요. 어쩌면 제가 이런 고통스런 읽기를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래도 읽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번 읽기에는 이번보다 더 이해되기를 바라며, 힘들고 괴로웠던 <존재와 시간> 읽기를 마치겠습니다.

*글을 써놓고 읽어보니 생각보다 제가 이런 책읽기를 이제는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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