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위대함 교부문헌총서 28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성염 역주 / 분도출판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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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50.영혼의 위대함-아우구스티누스

'내가 보기에 영혼이란 신체를 다스르기에 적합한, 이성을 갖춘 어떤 실체일세.'(105)

쓸데없는 말.

제가 분도출판사의 책을 읽을 날이 올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기독교인도 아니고, 기독교에 큰 관심도 없는 사람이라서요. 그런데 중세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기독교 관련 책을 읽을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분도출판사의 책을 읽을 수밖에 없더군요. 앞으로도 중세철학 관련 책을 계속 읽게 된다면, 분도출판사의 책들을 종종 읽게 될 거 같습니다. 이게 좋은 일인지 좋은 일이 아닌지는 잘 모르겠네요. 그저 눈앞에 닥친 흐름을 거부하지 않고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렵니다.

영혼.

어느 순간인가 저는 영혼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을 제 주변에서 볼 수 없었습니다. 제가 기독교를 믿고 교회나 성당에 다닌다면, 그래도 많이 들을 수 있었을텐데. 제가 기독교인도 아니고 교회나 성당을 다니는 사람이 아닌데다가, 제 주변에 교회나 성당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서 영혼이라는 말을 쓰는 이가 거의 없거든요. 분명히 사전에는 존재하는데 제 주변에서 들을 수 없고, 저 자신도 쓰지 않기 때문에, 영혼이라는 단어는 저한테 '사어'처럼 느껴집니다. 존재하지만 죽은 단어. 사전에만 존재하고 생명력 없이 사전에 박제된 단어. 영혼은 저한테 그런 단어입니다.

이상한 경험.

영혼이라는 단어가 저한테 분명히 죽은 단어입니다. 그런데 중세 철학에 관심을 가지고 책을 읽어나가다 보니 영혼이라는 단어가 너무 많이 나와 기분이 묘합니다. 저한테는 생명력이 없고 죽은 단어인데, 중세철학을 다룬 책에서는 생생히 살아 있는 단어로 나와서. 이게 참 이상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아무도 쓰지 않고 저도 이제는 거의 잊어버린 단어처럼 느껴지는데, 제가 읽는 책에서는 생생히 살아 숨쉬며 계속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니까요. 현실의 존재감 없음과 책 속의 생명력이 보여주는 괴리감. 이걸 이상한 경험이 아니라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영혼의 위대함>이라는 책.

현실에서 거의 쓰지 않는 단어이든 아니든, 현실과 책의 괴리감을 느끼든 아니든, 저는 제 자유의지에 따라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영혼의 위대함>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책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영혼론 삼부작 중의 하나로, <독백>과 <영혼불멸>에 이어 3부작의 마지막 작품입니다.구성은 영혼론 삼부작의 다룬 두 편과 마찬가지로, 대화편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실제 아우구스티누스의 제자인 에보디우스가 대화의 상대방으로 나오고, 대화를 통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에보디우스를 깨우치며 자신의 논리를 전개시켜나갑니다. 뭐가 떠오르지 않나요?^^ 맞습니다. 이 책은 플라톤의 대화편을 떠올리게 합니다. 플라톤 대화편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산파술도 당연히 떠오르고요.

영혼의 위대함.

책은 '영혼이 얼마나 큰가요?'라는 질문부터 시작합니다. 영혼의 크기를 묻는 제자의 질문에서 시작한 둘의 대화는 영혼이 물질이냐 아니냐 하는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영혼을 물질로 파악하려는 유물론적 시각을 논파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영혼이 물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영혼이 물질이 아니라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아우구스티누스는 영혼이 비물질적 실체라고 주장합니다. 자, 비물질적 실체라는 말이 나온 이상 이 말을 살펴볼 수밖에 없습니다. 비물질적 실체라는 말은, 물질이 아닌 비물질이지만 실체가 있다는 말이겠죠. 물질이 아닌 비물질인데 실체가 있다라... 그게 무슨 말이죠?^^;; 현대를 살아가는 저의 입장에서는 이 말이 잘 이해가 안 될 겁니다. 하지만 영육이원론이 일반화된 중세인들은 이 말을 잘 이해할 겁니다. 중세인들의 세계관에서는 형이하의 세계에 속하는 물질과 형이상의 세계에 속하는 정신은 구분됩니다. 물질의 세계는 의미 없고 실체 없는 것들이 가득한 평범한 감각의 세계입니다. 여기에 속하는 것들은 신이 창조하긴 했지만 신과의 거리가 너무나 멉니다. 반대로 형이상의 세계에 속하는 정신과 영혼은, 그 자체로 물질의 세계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물질보다 신에게로 향하는 길에서 앞서 있습니다. 그래서 중세인들은 영혼은 위대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혼은 육체를 다스리는 것으로, 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혼은 육체와 같은 물질이 아니지만, 본질적인 가치를 지닌 비물질적인 실체입니다. 영혼은 신이 창조한 세계에서 이성을 가지고 신이 창조한 세계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혼은 신을 믿고 사랑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혼은 신이 창조한 세계의 진리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런 가치와 힘과 능력을 지닌, 이성이 위대하지 않다면 뭐가 위대하겠습니까? 중세철학의 큰 틀을 형성하는 교부철학을 대표하는 아우구스티누스는 <영혼의 위대함> 같은 책으로 중세인들의 시각을 대표하면서 그것을 더욱 더 강화해나갑니다.

글을 마치며.

현대인인 저는, 제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관념과 삶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읽은 중세철학 책들은 현대인인 저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과 반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물질은 중요하지 않고, 정신이 더 중요하며, 영혼은 더욱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 어쩌면 제가 중세철학 책들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너무 낯설어서 일 것입니다. 너무 낯설어서 매력적이라는 말이죠. 제 독서의 흐름이 고대철학을 거쳐 중세철학에 머무르는 한, 이 낯선 매력을 마음껏 누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낯선만큼 무언가 다른 가르침과 의미를 주는 것이 있겠죠. 그걸 믿으며 두려움없이 중세철학의 숲 속으로 다시 떠나보겠습니다. <영혼의 위대함>을 읽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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