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적 지진 가라타니 고진 컬렉션 18
가라타니 고진 지음, 윤인로 옮김 / 비(도서출판b)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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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9.사상적 지진-가라타니 고진

'한신의 지진에서 내가 감지한 것은 탈구축이라기 보다는 파괴가 더 근저적인 것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건축은 무엇보다 자연에 의한 파괴에 대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좀 더 말하자면, 저는 형이상학의 탈구축보다도 그 비판적 재구축, 체계적인 건축을 지향해야 한다는 예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새로이 칸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 또한 거기에 있다고 하겠습니다.'(15)

<사상적 지진>은 가라타니 고진의 세 번째 강연집입니다. 1995년부터 2015년까지 가라타니 고진 자신이 했던 강연 중에서, 중요하고 남겨둘만하다고 여겨진 강연들을 기록하고 모은 책이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1995년이라는 해입니다. 한신 대지진과 오움진리교의 사린 가스 지하철 테러 사건이 있었던 해. 무라카미 하루키도 1995년에 있었던 오움진리교 사건에 충격을 받아 <언더그라운드>라는 논픽션을 짓고,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상을 탐구했죠. 가라타니 고진도 한신 대지진과 오움진리교 사건의 영향으로, 자신의 사상에 지진을 겪고 사상적으로 변화했다고 말합니다. 어떤 변화냐면, 바로 문학평론가에서 철학자로의 변화입니다.

사실 책을 보면 1990년대 초부터 가라타니 고진은,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 흐름의 중심에는 문학, 특히 문학 중에서 소설의 쇠퇴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가라타니 고진은 그걸 '근대문학의 종언'이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진행이 되지 않기에 조금 더 말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민족주의가 탄생하고, 근대적 국가가 민족주의에 힘입어 유럽에서 탄생하던 시절부터, 문학, 특히 문학 중에서 소설은 사회에서 큰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통일에서 보듯이, 근대 국가는 이질적이고 다양한 지역을 하나의 국가로 묶어야 했습니다. 거기서 가장 중심이 됐던 것이 언어입니다. 지역마다 정서가 다르고 문화와 가치관이 다른 상황에서, 이질적이고 다양한 것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던 것이 '표준어'로 불리는 '언어의 통일'이었던 것입니다. 표준어로 쓰여진 문학들이 근대 국가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문학 중에서도 특히 소설이 가장 큰 역할을 했죠. 하나의 서사를 통해 정서적 연대를 쉽게 이끌어내는 소설은, 근대 국민 국가의 탄생에서 이질적이고 다양한 지역의 주민들을 하나로 손쉽게 묶어내는 도구의 역할을 충실히 해냅니다. 그 이후 소설이 중심이 된 근대 문학은 사회에서 큰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 소설의 기원의 시대라 불리는 18세기에는 다양한 소설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실험적이고 독특한 양상들을 보여줬고, 대문호의 시대라 불렸던 19세기에 이르면 소설의 황금시대가 열립니다. 영국의 찰스 디킨스, 프랑스의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러시아의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같은, 이름만 들어도 빛나는 소설의 거장들이 19세기에는 가득했죠. 20세기는 실험적인 모더니즘과 2차 대전 이후의 더욱 더 실험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조류가 힘을 발휘하면서 소설의 전성기는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말에 이르러 영상 매체의 발달로 인해 소설은 예전과 같은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됩니다.

문학비평가로서 자신의 경력을 시작한 가라타니 고진은 그 미묘한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사르트르나 카뮈 같은 이들이 지배하고 있던 1960년대에 문학비평가로 자신의 경력을 시작한 가라타니 고진은 1980년대를 거치며 문학의 힘이 줄든다는 걸 느꼈고, 1990년대에 이르자 더 이상 문학이 과거와 같은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임을 실감합니다. 거기에 1995년의 한신 대지진과 오움진리교 사건은 그의 무너져 가고 있던 사상의 궤적에 결정타를 날립니다. 이걸 책에서는 사상적 지진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탈구축과 해체의 포스트모던한 문학비평 대신 새로운 사상적 구축을 통해서 자신만의 이론과 사상을 창조하며 철학자로 나아갑니다. 칸트가 말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자신의 사상의 흐름 안에서 이루어낸 것이죠. 흥미로운 건, 철학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던 당시에 가라타니 고진이 깊이 파고든 철학자가 칸트와 마르크스 였다는 점입니다. 철학사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었다는 칸트와 그 칸트에 관심을 가진 인물이 자신의 사상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었다는 묘한 동일시가 저에게는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어쩌면 칸트의 사상은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인물과의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가라타니 고진이 칸트의 사상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죠. 사상적 지진을 겪고 사상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위해서.

<사상적 지진>은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적 전환이라는 큰 틀의 주제가 가로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그때그때 가라타니 고진이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주제에 관한 가라타니 고진만의 독특한 사유와 철학이 담긴 글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습니다. 한 철학자의 흥미롭고 지적인 사유의 궤적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그런 글들도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그 글들은 한 철학자의 사상적 궤적의 변화에 첨가된 작은 음악들처럼 느껴집니다. 큰 연주가 있고, 잠깐잠깐 다른 형태의 음악들이 들리는 식으로. 어찌보면 저야말로 '사상적 지진'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집착하는, 아직도 저 자신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지 못한 인간에 불과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아직 이루지 못했기에, 그걸 이루어낸 사람의 사상을 들여다보는 게 더 재미있는 게 아닐까요? 미완이기에 어느 정도 사상적인 완성을 이룬 이의 지적인 궤적을 바라보는 게 재미있는 것이죠. 저는 이 부분이 제가 이 책에서 재미를 느낀 포인트라고 생각합니다. ^^;;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고, 그 주위를 다른 행성들이 돈다는 '천동설'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태양이 중심에 있고 그 중심을 지구가 돈다는 '지동설'이 지배하는 세상으로의 변화.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의 이름에 빗대어 말하는 이 변화는 실로 경천동지할만한 변화입니다. 칸트는 이런 변화를 철학에서 이끌어냅니다. 중세까지 철학의 중심은 신이었습니다. 철학자들은 신이 창조한 자연과 우주를 탐구하며 신의 신비와 위험을 밝혀내기만 하면 됐죠. 여기서 신은 주체이고 인간은 객체였습니다. 하지만 중세가 무너지면 더 이상 중세와 같은 사상은 가능하지 않게 됐습니다. 니체가 말한대로, 신 중심의 사회는 무너져 갔고, 인간의 중심이 되는, 인간이 주체가 되는 계몽의 시대가 등장하면서, 신이 아니라 인간이 주체가 되는 철학이 등장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칸트가 등장합니다. 칸트의 철학적 인식론에서는 인간의 주관적 인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 외부의 사물이나 자연은 인간에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인간이 관심을 가지고 파악해야 그것이 의미가 있고 인간 삶에 관여하는 무언가가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의미 없는 무언가에 불과한 것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칸트에 이르러서야 철학의 주체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됩니다. 인간의 주관적 인식에 들지 못하는 것들은 철학적 객체가 되고요. 이 변화는 정말 큽니다. 이제 인간보다 우위에 있던 신이 창조한 자연은, 인간이 관심을 가져야 의미를 가지는 존재로 쪼그라듭니다. 인간이 관심을 가져야 의미를 가진다는 인식에서는, 인간이 자연을 개발하고 쓰는 존재가 된다는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을 도구로 보고 개발하고 쓰는 근대적 인간의 출현의 기원에 칸트의 철학적 인식론이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본다면 칸트가 말한 대로 칸트의 철학은 진실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신에서 인간으로 철학의 주체를 변화시켰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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