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44.순수이성비판1-칸트
칸트의 철학은 계몽철학의 정점에 서 있다. 그러나 정점은 오르막의 끝이자 내리막의 시작이다. 계몽철학으로서 칸트의 철학은 모든 진리의 본부를 인간 이성에 두지만, 그 이성은 자기비판을 통하여 한계에 자각한 이성이다.
"계몽의 시대"는 "진정한 비판의 시대요, 모든 것은 비판에 부쳐져야 한다."(AXI) "이성은 오직, 그의 자유롭고 공명한 검토를 견뎌낼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꾸밈없는 존경을 허용한다."(AXI) 이것이 진실인진대, 이성은 응당 자기 자신부터 비판할 일이다. 이성이 "자기 자신의 능력에 대한 선행적 비판이 없이"(BXXXV) 하는 일은 무엇이나 그 자체가 교조적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이에 칸트의 계몽철학은 이성비판에서부터 발걸음을 내딛는다.(19)
2020년 8월 7일. 오늘은 한번도 나간 적 없는 독서모임에 마음먹고 처음으로 나갔습니다. 독서모임에서 여러 이야기를 어찌어찌 나누고, 제가 사는 동네 근처에 사시는 분과 같이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으로 가면서 저는 <순수이성비판1>을 읽고 들었던 생각을 그 분에게 토로했습니다.^^;;;;;
솔직히 10프로도 이해 못했다. 읽고 나서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서 멍하니 있었다. 이게 책을 읽은 게 맞나?
저는 거기에 덧붙여서 말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도 내가 이런 책을 왜 있는지 후회와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왜 이렇게 이해 안 되는 책을 다 읽는다고 붙잡고 있는 것일까? 어떤 의미에서는 나 자신이 '변태'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읽을 수 없는 단어 덩어리와 문자 덩어리로 나 자신의 정신과 두뇌를 학대하는 변태.
제 말은 또 이어집니다.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학대하고 회의감을 무수히 느끼는 결과로 <순수이성비판1>이라는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고통 없이는 결실도 없는 법. 이해 안 되면 읽고 또 읽으면 되는 게 아닐까? 일단은 읽었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련다. 내가 책에 주는 별점 다섯 개도 책이 재미있어서 주는 게 아니다.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사실 자체가 기특해서 나 자신에게 선물하는 셈치고 주었다.
어쩌면...
나는 이 책을 읽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이 책에게 '읽음 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고전 읽기를 이어나간다면, 이렇게 읽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간신히 읽는 독서가 종종 나올지도 모른다. 그때를 대비하여 내 마음을 다잡아야 겠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 없이는 읽을 수 없을테니까.
각오는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당하고 보니 이게 너무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발을 내딛었으니 계속 나아가는 수밖에요.
추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