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노래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5
토니 모리슨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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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58.솔로몬의 노래-토니 모리슨

모든 사람이 흑인의 목숨을 원해. 모든 사람이. 백인 남자들은 우리가 죽지 않으면 조용히 있기를 바라지- 조용히 있는 건 죽은 거나 다름없는데.(348)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습니다. 책이 쉽게 읽혀서요.^^ '책이 쉽게 읽혀서 놀랐다?'라고 반문하실 수 있는데요, 네, 저는 말 그대로 책이 쉽게 읽혀서 놀랐습니다. 그 이유는 작가의 이름 때문입니다. 토니 모리슨.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저 작가의 이름이 책에 쓰여 있지 않았다면, 쉽게 읽힌다고 해서 놀랄 이유는 없었을 겁니다. 지금까지 제가 읽었던 토니 모리슨의 책은 쉽게 읽히지 않았습니다. 나,너,그,그녀 같은 다양한 인칭들을 마구잡이로 섞어서 쓰거나, 다양한 인물들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혼합해서 쓰거나,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대를 마구 뒤섞어 놓는 것 같은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며 실험적인 구성,문체들이 가득했거든요. 역설적으로 저는 그래서 토니 모리슨의 책들이 좋았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실험적인 것들이 신선하고 흥미로웠거든요. 또 그것을 통해 버림받고 잊혀진 '흑인 여성' 혹은 '흑인'들의 삶의 서사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며, 그들의 삶의 현실을 문학적으로 알려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문학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의 틀을 서사를 통해 구현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이 소설이 쉽게 술술 익혀서 놀랬습니다. 역설적으로 어렵지 않아서, 쉽게 익혀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읽을 때 힘들지 않으니까요.^^

소설은 일단 흑인 남성이 주인공입니다. 이것도 다른 부분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읽은 토니 모리슨의 소설에서는 다 흑인여성이 주인공이었거든요. 어쨌든 소설은 메이컨 데드 3세, 밀크맨이라는 별명을 가진 인물의 자기의 뿌리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주인공의 별명이 왜 밀크맨인지는 소설에 나와 있어서 말하지 않겠습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소설은 토니 모리슨의 다른 소설들처럼 소설의 흐름이 혼랍스럽거나 난해하지 않고, 일직선으로 흘러나갑니다. 밀크맨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흔들림 없이 하나하나 이야기해 나가는 방식으로요. 다른 인물들이 화자로 이야기에 간혹 등장하지만, 그들은 일직선인 소설의 흐름을 끊지 않고, 이야기를 풍성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요소로서 이야기에 참여합니다.

소설은 성장소설처럼, 주인공 밀크맨이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북부의 부유한 흑인 출신으로, 다른 흑인들과 달리 커다란 차별을 느끼지 않고 부유하게 살아가는 밀크맨은 흑인들의 차별이라든 억압에 무관심한 모습을 보여주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우연한 사건으로 자신의 뿌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집을 떠나고 싶다는 욕망과 숨겨진 금을 차지하고 싶다는 섞이며 운명의 격랑에 휘말리며 자신의 근원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남부에서 자신의 땅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다 자신의 땅을 차지하려는 백인들에 의해 억울하게 살해당하고 땅을 뺏긴 메이컨 데드 1세나, 아버지의 살인으로 힘겨운 삶을 살다 북부로 흘러들어가며 거기서 처절하게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며 가족의 사랑에 관심없는 비인간적인 삶을 사는 메이컨 데드 2세에 비해, 3세인 밀크맨은 차별을 크게 느끼지 않는 존재였지만, 자신의 근원을 찾아나서는 과정을 통해 역으로 차별을 실감하게 됩니다. 차별받는 흑인과 동떨어진 외로운 섬 같았던 밀크맨은, 자신의 근원을 찾아나서며 비로소 다른 흑인들과 다를 바 없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흑인이 됩니다. 예외적이고 개인적인 흑인에서 사회적 현실의 격랑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괴로워하며 슬퍼하고 고뇌하는 흑인 공동체에 포함되는 흑인으로의 변화. 밀크맨이라는 예외적인 개인에서, 미국의 흑인이라는 하나의 공공적인 인간으로의 변화. 이 변화의 과정을 어렵지 않고 쉬운 문체와 흡입감 있는 스토리와 인물들의 생생함을 통해 보여주니 이 책이 재밌을 수 밖에 없죠. 실제로 토니 모리슨의 소설 중에서도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고요.

그런데 변화 자체는 좋은 현상이지만, 변화가 주인공에게 과연 좋은 것이기만 할까요? 당연하게도, 이 소설은 동화가 아니고, 동화가 아니기에 만만치 않은 현실의 벽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을 제외한 다른 이들의 삶은 주인공의 극적인 변화가 이룩한 삶의 생생함에 크게 영향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죽은 체로 살거나 죽습니다. 악독하게 살아야만 하는 아버지, 애정 없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죽은 삶을 사는 어머니, 대학을 나왔지만 흑인 여성이라는 벽에 가로막혀 죽은 듯이 사는 누이들, 밀크맨을 사랑하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죽는 헤이가, 불평들의 그늘을 견디지 못하고 백인을 죽이는 결사를 조직한 밀크맨의 친구 기타 부터 다른 이들까지. 물론 그들의 나름의 생명력을 가진 삶을 사는 것 맞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흑인의 현실'을 넘어설 수 없죠. 결국 현실을 깨닫는 다는 것은 현실의 벽을 절절하게 느끼는 것과 다름 아닙니다. 마지막의 열린 결말 같은 부분도 그렇고, 토니 모리슨은 동화가 아닌 현실을 보여주며 독자에게 깨달음과 더불어 현실의 견고함도 알려줍니다.

지금 미국에서 인종 차별을 둘러싼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 현실을 보고 있노라니, <솔로몬의 노래>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현실의 견고함은 지금도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솔로몬의 노래>처럼 심각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견고한 차별의 벽 앞에서, 저는 <솔로몬의 노래>와 같은 또다른 흑인 서사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짐승이 아닌 인간이 되었지만, 백인에 비해서 여전히 이등 국민 같은 미국 흑인들의 삶을 위해서도 그렇고, 외부에서 그들의 차별을 서글프게 바라보는 저 같은 외부인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저는 여전히 그런 서사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토니 모리슨을 대신한 다른 누군가가 지은 또다른 형태의 '솔로몬의 노래'가 들려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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