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열쇠의 계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951.책과 열쇠의 계절-요네자와 호노부

아무리 훌륭한 규칙이라도 언젠가 어기게 된다. 그렇다면 지킬 수 있을 때 지키고 싶다고. 맞아, 나도 언젠가 이상론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될 날이 오겠지. 그래도 마쓰쿠라, 조금만 더 지켜줄 수 없을까?(365)

TV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된 <빙과>의 원작소설가인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은 저에게 복합적이고 독특한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덧없는 양들의 축연>이나 <보틀넥>,<추상오단장> 같은 작품들은 무겁고 어두운 감정의 파고로 저를 내려앉히는 느낌이고요(특히 <보틀넥> 같은 작품은 어찌나 우울하고 어둡던지 읽다가 우울의 계곡 속으로 추락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인사이트 밀>이나 <부러진 용골> 같은 작품들은 익숙한 장르의 공식을 해체하는 신선한 느낌의 세계로 저를 인도하면서도 어딘가 복합적이고 묘한 감정을 불러왔고요, <빙과>가 속한 '고전부 시리즈'나 '소시민 시리즈'는 청춘 소설 같으면서도 청춘 소설 같지 않은 씁쓸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 모든 감정들을 종합해 봤을 때,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들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복합적인 감정을 들게 만드는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책과 열쇠의 계절>도 요네자와 호노부 특유의 복합성이 가미된 '청춘 미스터리 소설'입니다. 일반적으로 청춘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청춘 소설에 미스터리를 가미한 소설입니다. 이 때의 청춘은 우리가 아는 청춘입니다. 이미 지나간 버린 젊음의 향수를 간직한, 청춘만의 낭만과 희망이 펼쳐지는 그 청춘. 하지만 요네자와 호노부의 청춘 소설은 일반적인 청춘 소설과 다릅니다. 그는 낭만과 희망, 추억의 공간인 청춘 소설에 냉정한 현실을 덧붙입니다. 밝고 희망적인 청춘의 이면에는 냉정한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는 걸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죠. 청춘이라는 낭만의 무대에 차가운 현실의 무게를 더함으로써 그의 청춘 소설은 따스한 청춘과 차가운 현실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공간이 됩니다. 그래서 그의 청춘 미스터리 소설은 씁쓰레하고 쓰디쓴 맛이 납니다. 상쾌하고 밝은 맛의 청춘소설과는 다른.

이 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춘의 낭만, 십대시절의 향수가 어른거리지만 그 주위를 맴도는 현실의 무게감이 어울러진 소설로서. 책에는 두 명의 십대소년이 등장합니다. 3학년이 사라진, 한가한 고등학교 도서실을 지키고 있는 2학년 출신 두 명의 도서위원. 이 둘은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자 탐정역할을 합니다. 홈즈-왓슨 콤비 같은 탐정과 조수가 아니라, 탐정이라는 대등한 관계에 놓인 홈즈-홈즈 느낌의 탐정 콤비로서 그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해결해나갑니다. 둘이 협력하면서 사건을 해결해나가는데 둘의 스타일과 소설에 차지하는 역할은 조금씩 다릅니다. 키크고 잘 생긴 마쓰쿠라 시몬은 놀라운 추리력을 가진 인물로서 냉소적이고 어두운 구석이 있는 인물로, 사건을 냉정한 현실의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그의 동료이자 소설에서 화자인 '나'로 나오는 호리카와 지로는 소극적이며 순진한 인물로 묘사되지만 마쓰쿠라 시몬 못지 않은 추리력으로 시몬과 협력하여 사건을 해결합니다. 시몬과 다른점이 있다면 지로는 사건을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인간들의 따스함과 희망을 지켜줄려고 합니다. 시몬이 현실을 상징한다면, 지로는 낭만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겠죠. 흥미로운 부분은 이 둘이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시너지 효과를 일으킵니다. 혼자 있을 때 보다 함께 있을 때 더욱 더 빛을 발하는 관계라는 말입니다. 어쩌면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낭만과 현실은 서로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조금 더 나은 것으로 만든다'라고. 저만의 오독일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보니 이 소설이 현실과 낭만의 이중주로 빛나는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그 이중주는 저에게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현실을 견뎌낼 힘을 주는 낭만과 낭만의 공허함을 가라앉혀주는 현실의 무게감의 조화로, 삶을 살아나갈 힘을 얻는 식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