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는 보르헤스의 문학적 동지로서 보르헤스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 보르헤스 사후인 1985년 이후에야 주목을 받기 시작한 작가이다. 보르헤스의 문학적 동지답게, 그는 자신의 소설에 환상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소설적인 환상은 보르헤스와 다르다. 보르헤스의 환상이 문학적이고 텍스트적인 요소가 많다면, 카사레스의 환상은 과학이나 사상,철학에 기반한 좀 더 현실적인 것이었다. 문학적이고 텍스트적인 기법으로 현실과 환상을 겹치는 것이 보르헤스의 환상이었다면, 카사레스는 현실이 아님에도 마치 현실인 것처럼 보이는 환상을 보여줌으로써, 세상에 대한 확실성이 사라진 시대의 불확실한 현실적 경향을 소설로 형상화한다. 과학소설과 추리소설, 신화와 전설의 요소들을 이용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하면 엄청 어려운 소설 같겠지만, 카사레스의 소설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과학소설(SF)와 추리소설, 연애소설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서사 구조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보르헤스의 소설보다 훨씬 읽기 쉽다.(물론 동시대 아르헨티나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담거나 그것을 패러디하는 부분이 있기에 그걸 제외한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어쨌든 카사레스의 환상 속에서 빠져서 헤매다보니 어느새 책이 다 끝나 있었고, 나는 필연적으로 다음 책으로 넘어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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