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박스>는 해리 보슈 시리즈의 열여섯 번째 작품이다. 초반부의 작품들에서 해리 보슈는 베트남전의 트라우마, 어린 시절의 상처 같은 과거의 극복하지 못한 것들과 대면하며 자신의 과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후의 작품들에서 그는 정치적인 압력, 극악한 연쇄 살인마, 범죄자와 대결하며 범죄자처럼 어두워지는 자기 자신 같은, 현재의 사건들과 맞부딪치며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해나간다. 노년에 이르면, 해리 보슈는 미제 사건 전담팀에 들어가 과거의 해결하지 못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자신의 과거를 거쳐 자신의 현재, 타인들의 과거로 나아가는 셈. <블랙박스>는 타인의 과거와 만나며 그 과거의 어둠을 파헤치는 해리 보슈의 모습이 그러져 있다. 그가 이번에 맞부딪친 사건은 1992년의 LA폭동의 와중에 살해된 덴마크 여기자 사건. 그 사건의 초기 수사를 담당했다 폭동 때문에 사건과 멀어져 이 사건이 미제 사건이 됐다는 자책감이 있는 해리 보슈는 다른 작품들에서처럼 '사건의 진실'에 이르기 위해 모든 난관을 견디어내며 오로지 직진한다. 피해자에 대한 죄책감이라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가지면서. 우리가 할 일이란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해리 보슈를 응원하는 길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런 행동이 이 사회의 어둠을 그나마 줄일 수 있는 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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