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을 죽이고 싶나 - 우리는 해냈다!
원샨 지음, 정세경 옮김 / 아작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사장을 죽이고 싶나-윈샨

금융 엘리트라면 남자든 여자든 사냥감에만 군침을 흘리는 늑대가 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고객 역시 늑대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똑같은 늑대여야만 함께 최대의 이익을 거둘 수 있다.(53)

​성공하는 사람은 다른 이의 시체를 밟고 올라가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과거도 밟고 지나가야 한다.(195)

하늘이 내게 재능을 내렸으니 반드시 그 재능을 쓸 곳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능은 쓰일 곳을 알아야 비로소 쓸모가 있는 것이다.(282)

세상 만물은 하나의 순환이다. 끊임없이 흐르고, 전환하며, 이름을 바꾸고, 겉모습을 바꾸다 또 다른 순환을 맞이한다. 가장 먼저 본모습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승자이다.(340)

뭐든지 시작은 아주 중요한 법이죠.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이렇게 시작이 중요한 만큼 멋지고 의미있고 뜻깊은 책으로 한 해 독서를 시작해야 했지만, 글쎄요, 세상 일이라는 게 자기 맘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생각하는 바와는 달리 그저 자기 앞에 다가온 삶의 힘앞에 밀려서 살아나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고, 삶이고, 저의 2020년 독서입니다.(^^;;) <사장을 죽이고 싶나>를 2020년 첫 책으로 읽게 된 건,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저 이 책이 제 눈앞에 있어서 읽다보니 된 겁니다. 날짜 생각 안하고 읽다 뉘늦게야 이 책이 2020년 첫 책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죠.

2020년의 목표 중 하나로 읽은 모든 책에 대한 서평을 계획한 저에게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어떻게 써야 하냐는 중요한 점입니다.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이 책 서평을 어떻게 써야할까요? 생각끝에, 아, 무언가 떠오릅니다. 이 책이 포함된 장르인 '추리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로 해서 써보면 되겠다는 생각이. 자, 그래서 한번 적어봅니다. 추리소설이란 무엇일까요? 역시 이것도 여러 정의를 내릴 수 있겠죠. 저도 제 나름의 정의를 여러번 내려봤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정의를 한 번 내려보고 싶네요. 제 머릿속에 갑자기 떠오른 정의는, 추리소설이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는 이야기'로 바꾸는 장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보죠. 문이 모두 닫힌,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곳에서 한 사람이 죽었다고 칩시다. 아무도 들어올 수 없고, 안에 들어 있는 사람이 갇힌 상태에서 일어난 살인. 이건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죠. 추리소설에서는 탐정이 여기서 등장합니다. 탐정은 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추리력을 통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되는 이야기'로 바꾸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독자들에게 알려줍니다. (보충해서 말하면, 탐정이 이해할 수 없는 말도 안되는 사건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사건으로 바꿀 수 있으면 그건 추리소설이고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자체로 머물며 비현실적이거나 초현실적인 일로 마무리된다면 그건 공포소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저는 추리소설 이야기를 하니까 추리소설 이야기만 해보도록 할께요.^^;; 탐정이 이야기하는 '말이 되는 이야기'는 '진리,공리,진실'이라는 말로 바꿔도 됩니다. 탐정은 어둠에 가려진 진리,공리,진실을 찾아내는 존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행동과 능력으로 어둠 속에 숨겨진 진리,공리,진실을 찾아내는 존재. 이렇게 적으면 탐정이 나오는 추리소설이 얼마나 근대적인 장르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전근대라는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세상의 틀을 벗어나 이성과 논리성과 합리성으로 무장한 근대인이 되어 세상의 발전을 이루어내려는 근대성 그 자체인 문학 장르.

추리 소설도 어느 순간까지는 저런 근대성 그 자체로 존재해왔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근대를 넘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로 넘어서고, 절대적인 진리가 상대성의 세계에 자리를 내어주고, 복제품과 진품의 가치가 비슷해지는 세계가 되면서 추리 소설도 변화를 맞습니다. 진실을 탐구하는 진리의 추구자 같았던 탐정들이 이야기에 휘말려 들어가 이야기 속 등장인물에 불과하게 되더니 어느 순간에는 추리 소설의 틀 자체를 해체하는 모습까지 보이게 됩니다. <사장을 죽이고 싶나>는 어디에 있냐고요? 당연하게도 이 소설은 현대 추리 소설입니다. 진리의 추구자이자 진실의 대변자 같은 탐정이 나오는 소설이 아니라, 진실을 찾다가 그 진실이 거짓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소설.

<사장을 죽이고 싶나>도 추리소설이기에 범인이 있고 탐정에 해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범인은 거짓의 존재이고, 탐정은 진리를 찾는 존재처럼 보이죠. 그러나 책을 다 읽고 나면 우리는 알게 됩니다. 범인도 탐정격의 인물도 다 거짓의 존재라는 사실을. 여기에 진리나 진실은 없습니다. 존재하는 건,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여 거짓을 통해서라도 살아남으려는 자본주의적인 인간들입니다. 그들을 지배하는 건, 살아남으려는 욕망, 성공하려는 욕망, 남을 짓밟고서라도 자신이 이득을 얻으려는 욕망입니다. 범인과 탐정격의 인물이 다른 건, 살인을 했냐 안했냐 정도입니다. 살인이라는 요소를 빼고 나면 둘은 똑같은 존재입니다. 진리가 사라진 세상, 복제와 진품이 구분이 잘 안되는 세상, 진실의 추구가 그 의미를 잃은 세상의 상징 같은 그들의 이야기를 잃고 나니 씁쓸해지네요. 하지만 그 씁쓸함이 세상의 진실을 담으려는 스토리텔링 속에 담겨 있기 때문에 무조건 씁쓸한 건 아닙니다. 세상이 조금 더 나은 곳이라면 좋았을 텐데라는 아쉬움 정도라고 할까요? 아쉬움은 결국 다음 책에 대한 욕망으로 이어집니다. 네, 저는 어쩔 수 없는 책벌레인가 봅니다. 자본에 대한 욕망을 책에 대한 욕망으로 변화시킨 책벌레. 그렇게 본다면 책 속의 그들과 저는 별로 다를 게 없는 현대적인 인간들일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