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꾼 도스토예프스키 전집 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재필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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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27.노름꾼-도스토에프스키

내가 보기에는 도박에서 무언가를 기대하는 것이 어리석고 터무니없고 고루하다는 생각, 모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그런 생각이 더 우스운 것 같다. 도박이 다른 다른 돈벌이 수단들보다, 예를 들어 장사보다 더 나쁘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이유인가? 백 사람 중에 한 사람만이 돈을 따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25)

이문을 남기고 내기로 돈을 따는 것에 관해 말하자면, 사람들은 룰렛판이 아니더라도 곳곳에서 그런 식으로 돈을 벌고 있다. 다시 말하면 서로가 서로에게서 무언가를 빼앗고 따내고 하는 셈이다.(26~27)

제가 알 수 있는 것은 다만 이겨야 한다는 것이고, 또 그것만이 유일한 탈출구라는 것입니다.(54)

쾌락이나 희열은 언제나 유익하고, 야생적인 끝에는 권력조차 역시 일종의 독특한 향락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폭군이며 박해자가 되는 것을 좋아했어요.(61)

프랑스 인이 천성적으로 다정한 경우는 보기 드물다. 언제나 명령에 따르듯이, 그리고 계산 속에서 다정하게 구는 것이다.(80)

우리들 집에, 모스끄바에 없는 것이 뭐가 있단 말입니까? 정원도 있고 꽃도 있고. 여긴 그런 것들이 별로 없습니다. 향기가 가득하고 사과들이 익어가는 넓디넓은 그곳, 그런 것들이 이곳에는 없단 말입니다. 정말 꼭 외국으로 왔어야만 했을까요!(175)

당신의 말씀 속에서 전 과거의 현명하고 열광적이고 또 냉소적인 친구를 발견할 수 있어요. 그렇게 모순된 것들을 동시에 겸비할 수 있는 사람은 러시아인 뿐이지요.(251~252)

프랑스 인은 완성된 형식이고 아름다운 형식입니다. ... 파리 사람들의 민족적 형식은 아직 우리가 곰처럼 미련했을 때에 이미 우아한 형식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혁명이 귀족 정신을 계승했고, 그래서 이제는 아주 저속한 프랑스 인들까지도 매너와 태도와 표현들 그리고 생각에 아주 우아한 형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러한 형식에 관여하는 데에는 아무런 창의력도 없고 또 정신이나 마음도 없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유산에 의해서 손에 넣은 것뿐이지요. ... 러시아 아가씨는 그 형식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포장물이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그 사람 본래의 영혼이라고 인정하며, 또 그의 정신과 마음의 자연스러운 형식이라고 받아들입니다. ... 러시아 인들은 아름다움을 꽤 민감하게 구별할 줄 알고 또 그것을 갈망하지요.(256~257)

루이도어와 프리드흐스도어 그리고 탈러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도박대, 타오르듯 번쩍이면서 심판의 삽에서 무더기로 쏟아져 내리는 금화의 기둥들, 그리고 회전판 주위에 쌓여 있는, 길이가 1아르신이나 되는 은화의 기둥들, 나는 그것들을 너무도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 것이다. 방 두 개 정도의 거리를 남겨 놓고 도박장 가까이에 다가가기만 하면 나는 벌써부터 돈 쏟아져 내리는 소리를 듣게 되고, 거의 경련을 일으킬 지경까지 되고 만다.(287)

러시아 인들은 그 재능이 너무 많고 다양해서 자신에게 알맞는 형식을 발견하지 못하는 거예요. 여기서 문제는 바로 형식에 있습니다. 우리 러시아 인들은 대부분 풍부한 재능을 갖추고 있기 대문에 적절한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는 천재적인 능력이 필요합니다.(290)

예전에 고전 읽기 모임을 하면서, 모임을 리드하던 분이 소크라테스를 두고 '소선생'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소선생'이라는 표현의 어감이 좋았습니다. 저 멀리 이국에 사는 낯선 사람이 아니라, 마치 우리 곁에서 우리한테 직접 말을 걸어 무언가 가르치는 친근감이 들어서요. 이번에 도스토예프스키 책을 작정하고 읽으려고 그의 책을 잔뜩 준비했습니다. 준비하면서 저도 모르게 왠지 친근한 느낌이 들어서, 도스토예프스키를 '도선생'이라고 불러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지만 '도선생', 즉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의 극단적이고 격정적인 성향에 대한 심리묘사에 있어서는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작품도 마찬가지지만 <노름꾼>에서도 그의 장기는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도박장이 있는 외국의 도시 룰레텐베르크를 배경으로 두 개의 지옥에 빠진 남자 '나'와 그 주변인물들이 펼쳐내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두 개의 지옥?'이라는 질문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네, 맞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인 '나'(=알렉세이 이바노비치)는 도박과 지옥이라는 두 개의 지옥에 빠져 헤매고 있습니다. 근데 도박은 이해하겠는데 사랑도 지옥이라고? 나에게는 두 개의 애착의 대상이 있습니다. 도박과 사랑. 도박은 그 자체로 하면 할수록 수렁에 빠져드는 지옥이겠죠. 작가인 도스토예프스키도 이 소설을 통해 도박이라는 지옥의 모습을 보여주겠다 했고요. 그런데 또다른 애착의 대상인 사랑도 나에게 괴롭기 그지없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의 대상인 뽈리나는 나의 사랑을 무시하는 듯 행동하며 프랑스 귀족인 드 그리외와 영국인 신사 에이즐리 사이를 맴돕니다. 나는 그것 때문에 사랑하는 것만큼이나 뽈리나를 증오하며, 그녀를 죽이고 싶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잠시 관심을 보이면 그녀의 어떤 말이라도 들을 노예가 되며 기뻐합니다. '나'는 사랑 때문에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에게 사랑이 지옥이라는 표현이 잘 들어맞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마지막까지 두 지옥 사이에서 헤매던 나는 뽈리나의 감정을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도박이라는 지옥을 선택합니다.

사랑이 아닌, 도박이라는 지옥을 선택하며 수렁에 빠진 채로 소설의 결말이 나는 걸 보며, 저는 이 소설이 지극히 도스토예프스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성과 합리성보다는 감정의 격동, 격렬한 열정을 선호하고, 서양의 가치관과 성향보다는 러시아적인 사고와 문화를 좋게 보는 작가다운 결말이라서. 서구화에 반대화며 러시아적인 것의 부활을 꿈꾸는 도스토예프스키가 갑자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으로 변화하는 결말을 제시하지는 않겠죠? 그러니 도스토예프스키적이라는 것은 격정적이고 열정적이고 극단적인 그 무엇의 인간 성향이 만들어나가는 극단과 열정의 세계라고 할 수 있겠죠.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 도박을 하며 '도박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 저는 앞으로 제가 읽을 '도선생'의 소설들이 더 극단적이고 격정적인 무엇을 펼쳐보일 것이라고 예감합니다. 어쩌면 그걸 알면서도 계속 읽어나가는 저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세계에 빠진 도스토예프스키적 인간이겠죠. 그래서 '도선생'적 인간인 저는 포기하지 않고 그의 소설들을 읽어나갈 생각입니다. 흡사 도박이라는 지옥에 빠진 사람처럼, 저도 도스토예프스키라는 인간 심연의 세계를, 그 지옥을 탐사하는 기분으로. 이렇게 적고 보니 진짜 <노름꾼>의 '노름꾼' 알렉세이 이바노비치와 제가 비슷하게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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