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죄 : 프로파일링 심리죄 시리즈
레이미 지음, 박소정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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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26.심리죄:프로파일링-레이미

어젯밤 그들이 또 나를 찾아왔다.

늘 그랬듯 그들은 아무 말 없이 내 침대 앞에 섰다. 늘 그랬듯 나도 몸이 굳은 채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까맣게 타버린, 머리 없는 몸뚱이들을 두 눈으로 마주했다. 이번에도 그는 내 귓가에 대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너도 나와 같아.(9)

범인은 여성을 성폭행한 게 아니라 이 도시를 성폭행하고 있었던 겁니다!(18)

범인의 눈에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여성의 생식기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범행을 저지르는 그 순간, 범인은 이 도시를 정복했다는 쾌감을 느꼈을 것이다.(21)

고개를 들어 보니 짙은 남색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는 말이 있지. 그렇게 별이 되어 하늘에서 가족을 비추고 원수도 비추고 있겠지.(84)

공포는 끊임없이 비웃은 구렁이처럼 그들 사이를 오갔다. 그 구렁이는 혀를 날름거리고 독니를 드러내면서 두 사람의 공포와 무력감을 거만하게 감상하는 듯했다.(229)

넌 남들보다 더 많은 재능을 가진 만큼 더 큰 책임도 있어. 피해도 소용없다고. 놈을 잡는 게 죽은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야.(266)

팡무와 괴물 사이에는 짙은 안개가 끼어 있었다.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안개 속에서 놈이 자신을 훔쳐보며 몰래 웃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놈이 풍기는 피비린내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지척에 있었지만, 놈에게 닿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 그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것 같았다.(486)

마지막에 있는 '옮긴이의 말'을 보다가 이 책의 주인공이자 '심리죄' 시리즈의 주인공인 팡무가 '중국 독자들에게 영웅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말에 눈길이 갑니다. 영웅이라. 팡무가 영웅적인 인물인 건 맞습니다. 그는 천부적인 프로파일링 실력을 가지고서 엽기적인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들을 힘겨운 여정 끝에 잡아냅니다. 아직 발매되지 않은 '심리죄' 시리즈의 다음 작품들을 봐야 확실해지겠지만, '심리죄' 시리즈의 첫 작품인 이 책만 읽어도 분명 영웅적인 면모는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이 책에서 팡무는 영웅이라고 불리기에는 미흡한 존재입니다. 이 책에서의 팡무는 영웅이 아닌, 영웅의 씨앗을 품고 있는 인물입니다. 영웅이 되기 위한 길을 닦고 있는 듯한. 아니, 오히려 이 책의 팡무만 놓고 보면 어딘가 꺼려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 꺼려지는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아, 먼저 꺼려지는 부분보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볼께요. 이 소설은 재밌습니다. 엽기적인 연쇄살인마. 과거의 수수께끼를 간직한 미스테리한 탐정격의 인물. 그 인물이 보이는 천재성. 예측이 안 되는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과 그 살인의 진실을 밝혀 더 이상 피해자를 만들지 않으려는 탐정의 지적인 혈투. 예상 밖의 트릭과 서스펜스가 있는 액션. 마지막의 숨막히는 범인과의 승부까지. 이 책은 재미로 가득합니다. 추리소설을 읽어온 독자라면, 재미를 찾아 헤매는 독자라면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괜히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 영화와 웹드라마로 제작된 시리즈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저는 책의 재미보다는 팡무의 꺼려지는 부분에 더 꽂혀 있네요. 그 부분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으니 해보도록 할께요. 이 책의 팡무는 일본의 긴다이치 코스케에 비견될 수 있습니다. '긴다이치 코스케? 그게 누구지?'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네, 긴다이치 코스케는 일본 추리 소설을 대표하는 명탐정으로, 요코미조 세이시의 손에서 창조되어 지금까지 일본 탐정소설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된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인물은 또다른 악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범인이 노리고 있는 인물이 대부분 다 죽고나서야 사건을 해결한다는 악명. 희생자가 다 죽고 나서야 사건을 해결하는 걸로 긴다이치 코스케가 유명한 것이죠. 그렇다면 이 책의 팡무도? 네, 맞습니다. 이 책에서 팡무는 범인이 자기가 노린 사람들을 대부분 다 죽일 때까지 사건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두명 정도만 겨우 구합니다. 아마도 그건 작가의 의도이겠죠. 긴장감과 재미와 스릴을 주기 위한 이야기의 구성.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이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라면, 희생자가 대부분 다 죽고 나서야 해결하는 탐정 근처에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의 곁에 있는 것은 안 좋은 행동입니다. 그는 우리가 죽고 나서야 범인을 잡을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 책에 나오는 팡무가 현실에 있다면 일단 피하고 봅시다. 그것이 우리의 목숨을 지키는 좋은 방법입니다. 다행이 팡무는 현실에 없고 이야기의 공간에 갇혀 있네요. 휴, 다행입니다. 이야기에 있으니 이야기를 즐기면 되겠네요. 이게 뭔가 이상한 소리 같겠지만, 저는 나름 중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영웅이 되지 않는 팡무가 현실에 있다면 그를 꺼려해야 합니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니까요. 그가 영웅이 됐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럼 팡무가 영웅이 되는 이야기를 기다리면 되는 겁니까? 네, 그럴 겁니다. 기다리다 보면 영웅이 될 것이고 그러면 다가가면 됩니다. 물론 영웅이 되어 다가간다고 해도 죽을 확률이 줄어드는 것에 불과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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