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겔 스트리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2
V.S. 나이폴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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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23.미겔 스트리트-V.S. 나이폴

"그런데 그 사람이 왜 그 소녀를 버렸을까?"

...

"그야 우리들 사이에서 사내답게 살기 위해서였지."(19)

우리 거리에서는 아무도 포포가 파렴치한 행위 때문에 감옥게 가게 된 것을 딱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니까 이런 일은 우리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30)

엘리아스의 입에서 나온 그 '문핵'이란 말은 내가 들어본 말 중 가장 아름다운 낱말이었다. 그 말은 먹을 수 있는 것, 그것도 초콜릿처럼 맛이 아주 풍성한 그 어떤 것으로 들렸다.(52)

너 또한 시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돼. 그런데 너도 시인이라면 모든 것을 보고 울게 된단다.(72)

삶이란 참으로 끔찍스러운 것이라고. 불운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니. 그저 앉아서 그 불운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니.(148~149)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딸이

양키의 돈을 벌러 일하고 있네.

온 나라에 양키의 돈!

오, 양키의 돈이여!(239)

트리니다드에서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고도 처벌을 면한 적이 있어? 트리니다드에서는 사람들이 결백하면 결백할수록 감옥살이를 더 많이 해야 하고 뇌물도 더 많이 먹여야 해.(265)

저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어릴 때부터 이야기에 푹 빠져 지냈고, 이야기를 모아놓은 이야기책을 즐겨 읽었습니다. 이야기에 홀려 있다고 해야할까요? 이야기에 홀린 사람이 현대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 소설을 그저 지나칠 수는 없겠죠. 맞습니다. 저는 이야기에 홀린 사람답게 현대의 이야기인 소설을 즐겨 읽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연속적으로 써 온 서평중에 90프로 이상이 소설에 관한 서평이니 말 다 했죠. 물론 저라고 소설만 읽는 것은 아닙니다. 올해 초부터 5월까지는 소설은 거의 안 읽고 동양고전,서양고전에 엄청 빠져서 읽었습니다. 그런데 5월말 쯤에 칸트의 책 중에 <실천이성비판>인가 <판단력비판>인가 하는 책을 읽는데(정확하게 어떤 책인지 기억이 안 납니다^^;;) 갑자기 구토가 나올려고 하더군요. 책 읽다가 구토가 나올려고 하는 것은 거의 처음이라서 당황했습니다. 제가 사르트르의 <구토> 속 주인공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인지. '이런 이해도 안 되는 어려운 책을 왜 읽냐'하는 회의감도 들고, 읽으려고 책을 펴면 머리 아프고 도저히 못 읽겠고. 그래서 저는 책읽기를 포기했습니다. 완벽한 올스톱. 책읽다가 체한 셈치고 책읽기를 포기하고 두 달동안 지냈습니다. 책 말고 다른 걸로 취미생활을 하면서. 두 달의 휴식기간을 거치고 한 권씩 읽어보니 이제 읽을만 하겠더군요. 아직 완벽한 회복은 안 됐다고 생각해서 요새에는 제 전공분야인 이야기쪽으로만 파고들어 읽고 있습니다. 이야기에 홀린 사람이 자기 본분을 회복했다고 해야할까요?

현대판 이야기인 소설을 계속 읽다보니 저 나름다로 어떤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가 이야기꾼들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고대와 중세의 이야기꾼들의 후계자라고 할 수 있는 현대판 이야기꾼들의 소설을 읽을 때면 저는 즐겁고 너무 기쁩니다. 이 부분을 조금 더 파고들어가서 이야기해보죠. 어떤 면에서 본다면, 현대의 소설가들은 모두 이야기꾼들의 후계자들입니다. 하지만 전통적 서사를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소설가들을 굳이 이야기꾼의 범주에 넣을 필요는 없다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소설을 이야기꾼의 소설로 보지는 않습니다. 그들의 소설은 그들 나름의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습니다. 그걸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취향의 측면에서 저는 그들의 소설보다는 이야기꾼들의 소설을 더 즐겁게 봅니다. 취향의 문제라서 그걸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저는 저를 즐겁게 하고 빠져들게 하는 소설이 좋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전통적 서사를 거부하는 소설가들의 소설을 안 읽는 건 아닙니다. 그런 소설들을 읽을 때는 이야기꾼들의 소설과는 다르게, 편하지 않은 마음으로 읽어나간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어쨌든 제가 이야기꾼들의 소설을 좋아하고 그들의 소설을 읽을 때는 아이처럼 기뻐한다는 건 사실이라서, <미겔 스트리트>가 좋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네요. ㅎㅎㅎ <미겔 스트리트> 서평을 쓰면서 <미겔 스트리트> 이야기가 이제야 나온다니 해도해도 너무하네요.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는 인간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이번은 앞의 말들이 너무 많네요^^;; 앞으로는 서두 부분의 말을 줄이고 본문의 말을 늘이도록 하겠습니다.(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미겔 스트리트>로 돌아가죠. <미겔 스트리트>를 읽으며 다른 작가 한 사람이 떠올랐습니다. 중국의 모옌. 나이폴처럼 모옌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죠. 이야기꾼에 속하는 것도 비슷합니다. 하지만 제가 가장 비슷하게 여겼던 건 작품에서 드러나는 '어떤 느낌'입니다. 모옌은 평범한 인간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이야기를 전개하며 인간 삶의 복잡미묘한 부분을 복잡미묘하게 잘 드러내는 작가입니다. 어딘가 유머러스하면서도 슬프고, 슬프면서도 유머러스한 삶의 진실을 이야기로서 잘 풀어낸다는 말입니다. <미겔 스트리트>는 저한테는 모옌의 소설과 같은 느낌을 전해주었습니다. 나이폴은 트리니다드 섬의 수도인 '포트 오브 스페인'의 하층민 거주지인 미겔 스트리트 사람들의 삶을 어린 '나'의 시선으로 그려냅니다. '나'의 눈앞에 포착된 그들의 모습은 어딘가 우습고 권태롭고 그러면서도 슬픕니다. 비극과 희극인 기묘하게 섞여들어간 그들의 삶을 어려운 말 쓰지 않고 이야기로서 술술 풀어내며 비극도 아니고 희극도 아닌 '삶의 극'으로 묘사해내는 게 '모옌'과 비슷하다는 말입니다. 잘 쓰여진 이야기들은 비극과 희극을 넘나든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부분이 분명히 있는 거 같습니다.

차이점도 분명합니다. 모옌이 격동의 20세기 중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나이폴은 트리니다드 섬의 수도인 포트 오브 스페인에서 살아가는 식민지를 경험한 이들의 삶을 그리고 있거든요. 격동의 흐름 속에서 엄청난 파고를 겪었지만 모옌의 중국인들은 공통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고, 실제 현실이 어떻든 자기 삶을 살아나가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나이폴의 식민지인들은 다릅니다. 노예로서 아프리카에서 강제로서 건너온 흑인들과 식민지 시절 식민지 경영을 위해 식민지 종주국이 강제로 이주시킨 인도계 사람들이 대다수인 트리니다드 섬은 모옌의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의식이 없습니다. 그들은 다 개개의 사람들로서 존재합니다. 강제로 '이식된 삶'을 가진 식민지 거주민들이 단일한 국가의식이나 공동체 의식을 가질리는 없는 것이죠. 단일한 공동체적 정체성이 없으니 그들은 '주체'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식민지 종주국에 사회적,문화적,의식적으로 종속된 채 그들은 백인들의 삶과 문화를 동경하며 자신들의 삶과 문화를 끊임없이 평가절하합니다. 공동체적 정체성이라는 뿌리 없이 식민지 종주죽에 종속된 객체로서의 삶이 트리니다드 섬 사람들의 삶입니다. 개개인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부패와 부도덕이 널리 퍼진 건 말할 것도 없겠죠. 당연하게도 그들에게 성공적인 삶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성공된 삶을 살지 못하니 허무하며 권태롭죠. 허무와 권태, 부패, 부도덕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든 몸부림치는 성공하지 못한 삶. 그게 나이폴이 <미겔 스트리트>에서 그려내는 트리니다스 섬 사람들의 생활입니다. 소설의 화자인 '나'가 섬을 빠져나가는 걸로 끝납니다. 마치 나이폴이 식민지를 빠져나가 영국에 가서야 자기 정체성을 자각한 것처럼, 소설가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나'도 최후의 출구로서 식민지를 빠져나가는 걸 선택합니다.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는 책을 읽는 독자들이 생각할 일이죠.

그렇다고 해서 소설에서 그려내는 식민지인들의 삶이 지옥인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나름 몸부림치고, 나름 서로간에 온정을 간직하고, 서로를 돕기 위해 노력합니다. 온기와 온정, 연대의 몸부림, 동정 등이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바탕인 거죠. 그곳은 지옥이 아니라 힘겹고 고달픈 삶이 사는 이들이 가득한 곳일 뿐입니다. 나이폴은 유머러스하면서도 슬픈 이야기로 그들의 삶을 우리가 쉽게 읽을 수 있게 풀어냅니다. 이야기꾼의 재능으로 너무나 먼 곳의 삶을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죠. 나이폴의 손 끝에서 빚어내는 이야기의 힘을 통해 독자의 삶에 그들의 삶이 다가온 순간 이야기의 마법은 자신의 역할을 다하게 됩니다. 이 놈의 마법 때문에 제가 이야기를 끊을 수 없나 봅니다. 그리고 저 놈의 마법 때문에 앞으로도 나이폴 같은 이야기꾼들의 소설을 계속해서 읽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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