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죄
야쿠마루 가쿠 지음, 김은모 옮김 / 달다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7816.우죄-야쿠마루 기쿠

조금이라도 관계있던 사람이 자살하면 자신에게도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아. 허울 좋은 소리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자살을 막을 수 있는 건 사람과의 유대밖에 없어. 만약 그 사람과 좀 더 깊은 인연을 맺었다면... 누군가를 잃으면 반드시 그런 후회가 아픔이 되어 찾아오지.(57)

대중은 자기보다 불행한 사람을 보고 싶어서, 남이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을 엿보고 싶어서 돈을 내가며 주간지를 사는 거라고.(208)

늘 과거에 시달려. 어디로 달아나도 과거가 쫓아오지. 아무리 평범하게 살고 싶어도 다들 우르르 몰려들어 과거를 파헤치려고 해. 괴로워해, 괴로워해, 하고 몰아붙이지. 마치 너는 살 가치가 없으니까 죽으라는 것처럼...(276)

부모는 자식만은 절대로 체념하면 안 됩니다. 제 생각은 그래요.(443)

도망치지 말고 자신이 저지른 죄를 직시하며 살기를... 그 뿐이야.(492)

이 책을 읽다가 감정이 너무 북받쳐서 당혹스런 경험을 했습니다. 갑자기 가슴 속에 감정이 차오르더니 눈물이 솟구치려고 하더라구요. 얼마나 당혹스럽던지. 책을 읽으면서 더욱 감수성이 풍부해진 인간답게, 가끔씩 이런 일이 있는데 오랜만에 경험을 하니 놀라웠습니다. 감정의 파고가 지나가고 책에 적힌 저자의 이름을 들여다봅니다. 야쿠마루 가쿠. 이 작가가 이제 인간의 감정을 잘 파고드는 작품을 지속적으로 써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이 작가를 만났을 때는 무언가 강렬한 열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 다음 작품에서는 어딘가 방황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첫 작품에서 관심을 가지고 있던 '소년법'이라는 주제에 천착하고 그 주제를 소설 세계의 굳건한 토대로 삼은채로 그에 관련된 작품을 지속적으로 써내고 나니 어느새 이 작가는 사람의 흔드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돼 있더군요.

<우죄>도 야쿠마루 가쿠 답게 '소년법' 문제와 관련된 소설입니다. 소설은 두 명의 소년을 참혹하게 죽인 중3 학생이 소년원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사람답게 변화하고 성인이 되어 사회로 돌아오며 겪는 일을, 그가 사회로 돌아와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려내고 있습니다. 살인자로 과거의 기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공장으로 들어오는 스즈키, 어린 시절 왕따 당하던 친구의 자살에 큰 죄책감을 가진 채로 저널리스트의 꿈을 꾸다 현실 속에서 좌절하고 공장으로 들어온 마스다, 도쿄에서 만난 나쁜 남자친구 때문에 AV 배우 시절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는 못하는 공장직원 미요코, 소년원의 정신과 의사로 스즈키에게 헌신을 다하다 아들에게 소홀해서 아들에게 미움받고 본인도 아들에게 죄책감을 느끼는 야요이, 이 네 명을 토대로 그들과 관계된 인물들이 엮이면서 소설이 전개됩니다. 나쁜 소설이 쉬운 질문에 쉬운 답을 내놓고, 좋은 소설이 쉽지 않은 질문에 쉽지 않은 대답을 내놓는다고 저는 생각하데요,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소설은 쉽지 않은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쉽지 않은 대답을 힘겹게 내놓고 있습니다. 죄와 속죄의 문제,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 가해자의 삶과 그 인물과 연관된 삶의 문제, 죄와 우정과 사랑의 관계, 직업과 가족의 문제 같은.

사실 그렇습니다. 내가 친하게 지낸 사람이 과거에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과거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죄를 저지른 사람의 속죄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아니 속죄는 가능한가? 이런 질문에 쉬운 대답이 나올 수 있을까요? 질문 자체쉽지 않기에 대답이 쉽게 나올 수는 없습니다. 친구로 지낸 스즈키의 범죄 사실을 알고 고민하는 마스다나 연인 사이로 있다 스즈키의 과거를 알고 역시 고뇌하는 미요코의 행동은 거기에 우리 모두의 이름을 대입해도 별다를 게 없습니다. 우리 모두 고민하고 나름의 행동을 하겠죠. 하지만 그게 정답일리는 없고 그저 어쩔 수 없는 행동에 불과할 겁니다. 스즈키의 문제로 넘어가면 더 복잡해집니다. 죄와 속죄의 문제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문제입니다. 종교,철학,법학,사회학,범죄학, 심리학 같은 다양한 영역들이 뒤섞인 복잡한 문제. 결국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의 태도를 제시합니다. 살아남아서 지속적으로 속죄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그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작가는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속죄는, 죄를 잊지 않고 그 죄의 무게를 짊어지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오지는 않고, 저지른 죄는 돌이킬 수 없기에 그게 그나마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의 태도일 겁니다. 그때의 속죄는, 속죄하는 이에게 저주이자 축복일 겁니다. 죄의 무게감을 덜 수 있는 축복이자 죄를 영원히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저주. 그 속죄의 압도적인 무게감을 알려주는 마지막 구절 앞에서 저는 그저 묵묵히 속죄의 어려움을 인정할 뿐입니다. 죄는 사라지지 않는 현실이고, 속죄는 그 죄의 현실감을 지우려는 불가능을 향한 몸부림일 뿐이라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