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2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25
묵적 지음, 윤무학 옮김 / 길(도서출판)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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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2-묵적(윤무학 옮김)

이 책에 대한 서평을 도대체 몇 번이나 고쳐 썼는지 모르겠다. 고치고 또 고치고. 여러번 고친 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고치다가 여러번 미루는 것도 동시에 이루어졌다. 미루고 또 미루고. 고치다가 미루고 미루다가 고치고. 언제나처럼 <묵자2>에 대한 서평도 미루고 고치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 다른 글들처럼 사라질 뻔했다. 그러나...

이번만은 달랐다. 오기라고 해야할까, 분노라고 해야할까, 집념이라고 해야할까. 뭐라고 말로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감정들이 마음 속에서 치솟았다. '이번만은 포기하지 않겠다, 포기하고 싶지 않다, 반드시 글을 완성하겠다'는 생각과 감정들이 내 마음 속에서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언제나 포기했던 내가, 이렇게 '포기' 따위는 발로 차버리고 다시 도전을 하고 싶은 마음을 내비쳤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무적이었다. 고무된 마음에 따라서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다보니 마음이 어느새 진정된다.

마음이 진정되고 나니 내 모습이 보인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다 다리가 삐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집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처량하기도 하고, 마음 짠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다리 아픈 것 때문에 쉴 수 있어 좋기도 하고. 여러가지 모순된 감정들이 떠오른다. 나를 바라보는 또다른 나가 있어 내 모습을 다면적으로 비추는 상황에 가깝다고 할까.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고, 마음 편하기도 하고, 마음 불편하기도 한 여러 감정과 생각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떠오르는 데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에 휩싸여 자기 자신에 대해 한마디로 말하기 어려워 하는 나에 비하면, <묵자2>에 나오는 '묵자와 그의 제자들의 목소리'는 명확하고 확실하다.

어지렵고 힘겨운 삶이 지속되는 춘추전국시대라는 '난세'에 '묵자와 그의 제자들'은 차별 없는 사랑, 누구에게나 평등한 사랑의 삶의 형태인 '겸애'를 주장한다. 여기까지 쓰고 나면 동양철학이나 고전을 다룬 요약본이나 입문서에 나오는 묵자에 대한 설명과 똑같다. 그러니 길 출판사본 <묵자1,2>를 다 읽은 사람으로서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다. 더 나아가서 써야하는 것이 당연한 일. 이제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이루기 위한 글이 나와야 하는데...

나와야 하는데... 나오기가 쉽지 않다.(^^;;) 당연한 일을 당연하게 이루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개념에 의탁해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묵자>에서 가장 독특한 것은 아이러니다. 아이러니라고? 맞다. 그 아이러니. 모순,역설로 표현될 수 있는 그 아이러니. 나는 <묵자>에서 강렬한 아이러니의 냄새를 맡는다.

우선, 난세 속에서 힘겨워하고 고생하는 평민들을 위해서 '겸애'라는 사상을 주장한 '묵자와 그의 무리들은' '겸애'를 이루기 위해서 강력한 왕에 의한 정치를 주장한다. 엥? 서민과 백성들을 위해서 겸애를 주장하는 이들이 왕에 의한 정치를 주장한다고? 맞다. 서양에서 태어나고 발전하여 현대를 지배하는 현대적인 인권 사상이나 근대적 사고관을 지니지 못했던 중국 고대의 사상가 집단 묵자는, 겸애라는 자신들의 이상을 추구할 수 있는 가장 합당한 존재로 평범한 서민이나 백성이 아니라, 겸애라는 이상을 충실히 구현할 수 있는 왕과 그 왕을 따라서 겸애를 현실로 실천하는 묵가적인 생각을 가진 신하와 관료들을 내세운다. 누구나 차별하지 않는 겸애를 실천하기 위해서,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는 왕과 신하들을 내세우는 정치적 아이러니. 거기서부터 나는 묵자의 사상이 아이러니로 휩싸여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근대적 사고관을 가지지 못했던 고대사상인 묵가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고대사상인 묵가가 평등을 위채 내세울 수 있는 최대치의 노력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덧붙이면, 여러 나라의 군주나 정치 엘리트들에게 유세해서 등용되어야 했던 현실 속에서 묵가가 왕을 내세우는 정치를 주장한 건 어쩌면, 자신이 군주나 정치 엘리트들에게 어필하는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두번째 아이러니는 비공이라는 장에서 잘 드러난다. 기본적으로 묵가는 전쟁에 반대한다. 서민의 삶에 최악의 영향을 끼치고 여러모로 좋지 않다고 하면서. 하지만 묵가는 전쟁에 반대한다면서 무기력한 비폭력에 기대지 않는다. 전쟁과 폭력이 일상화되고 그것이 몇백년의 세월에 걸쳐서 쭉 이어진 춘추전국시대의 일상에 전쟁에 반대하는 비폭력이란 얼마나 쓸모없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을 묵자는 전쟁을 위한 전쟁, 공격을 위한 전쟁에 맞서서 '방어'를 위한 전쟁을 강조한다. 적이 눈앞에 나타나서 쳐들어오고 있는데 전쟁을 하지 말자는 것은 적에게 목숨을 내어놓는 다를 바 없어서. 전쟁을 막기 위해서 전쟁을 한다. 이 얼마나 아이이러니인가. <묵가2>에는 방어를 위한 전쟁을 하는 묵가가 제시하는 병법들이 꼼꼼하고도 세밀하게 적혀 있다.

세번째 아이러니는 귀신과 하늘에 대한 부분과 관련되어 있다. 묵자는 자신의 겸애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로서 하늘을 제시하고 있다. 묵자는, 왕과 신하들,백성들이 겸애를 따라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옳고 이루기만 하면 세상을 평화롭고 이롭게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늘이 겸애가 이루어지는 세상을 원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마치 기독교 신앙의 인격신 개념처럼, 묵자가 말하는 '천'은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가지고 세상을 자신이 생각하는 바에 맞추려고 한다. 이건 유가나 도가가 말하는 천과 다르다. 유가나 도가에서 말하는 '천'은 자연스럽게 세상을 이루어나가고 자연스럽게 인간의 삶에 배어들어 자연과 인간을 구성하면서 하나가 되어 인간과 공존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해 묵자가 말하는 천은 묵자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인위적인 개념으로서 볼 수 있다. 이론적 최종근거로서의 하늘, 이상의 버팀목으로서의 하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외부의 억압적 요소로서의 하늘은 도덕과 미덕의 최종근거로서의 신, 벌을 내리고 자신을 믿는 이들을 지키고 그들을 돕는 신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있다. 어찌되었든 하늘에 근거해서 겸애를 주장하는 묵자는 그것의 연장으로서의 귀신을 이야기한다. 귀신이 인간을 지켜보고 벌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선을 행하고 겸애를 이루어야 한다면서. 하늘과 귀신에 대한 부분을 보면 묵자가 확실히 고대 사상이라는 게 느껴진다. 고대인들이 가진 종교적이고 미신적인 부분에 의탁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이루어나기 때문에. 그런데 <묵자2>의 앞부분인 '묵경' 파트는 묵자에 깊게 스며 있는 고대 종교와 미신의 향기를 흩뜨러뜨린다. 청나라 말기에 서양에 의한 충격으로 자신들의 사상을 새롭게 살피기 시작한 제자학 연구자들이 가장 주목한 부분인 '묵경'답게, '묵경'은 과학과 기술, 수학에 대한 증명이 가득하다. 고대의 기술자나 엔지니어들이 하나의 주축을 이루었던 묵가 답게 '묵경', 부분은 과학과 기술, 수학에 대한 논리적인 증명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하늘과 귀신을 이야기하는데 과학과 기술, 수학에 대한 증명을 한다고? 역시 이것도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자세히 생각해보면 이것도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당대에 같이 경쟁했던 유가,도가,명가,종횡가 같은 학파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논파하는 '논변'의 목소리가 담긴 <묵자> 텍스트가 논리적인 증명이 없다는 게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신과 하늘, 과학과 기술이 공존하는 모습에서 나는 <묵자>에 아이러니가 가득하다는 내 주장을 굽힐 생각이 없다.

묵가는 제자백가에서도 주류가 아니다. 사상적으로 춘추전국시대 때는 승승장구했지만,진나라 때의 분서갱유와 한무제 때 유학을 관방철학으로 채택한 이후에 2천년 동안 침묵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것처럼. 청나라 말기에 서양에 의한 인위적인 충격으로 중국의 지식인들이 새롭게 자신들의 사상을 되돌아보다 재발견된 묵가는, 그 독특한 매력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제자백가중에서도 가장 백성과 서민들을 위한 사상을 펼쳤던 묵자, 실제로 그 당시에 서민과 백성들을 돕기 위해 가장 발벗고 났던 묵자, 자신의 이상들을 실천하기 위해서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최선의 노력을 다했던 묵자. 인간적인 모습과 최선의 노력이라는 행동이 더해진 묵자의 모습은 충분히 매력적이고 충분히 인간을 끌어당길 만하다. 유가나 도가만이 아니라 묵자라는 독특하고도 이색적인 사상가들을 만나면서 나의 동양철학 탐험도 무지개빛이 되어가는 것 같다. 저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매력을 가진 다양한 사상들의 매력이 어우러지면서 빚어내는 다채로운 빛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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