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하모니카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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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하모니카 -에쿠니 가오리-

 

*원래라면 제가 집중적으로 읽고 있는 ‘동양고전’ 관련된 책 리뷰를 써야하지만 어찌어찌하다보니 소설 리뷰를 먼저 하게 됐네요. 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한 번 써보겠습니다.^^;;

 

철학책을 읽는다는 건, 무언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당위’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말과 같습니다. 제가 요새 집중적으로 읽고 있는 동양고전들도 동양철학이라는 영역에 포함되기 때문에(자세하게 파고들어가면 여기에도 의문이 제기될 수 있지만 일단 복잡한 문제이기에 이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무수한 ‘당위’의 세계들을 헤치고 다녔습니다. 이 주장과 저 주장이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닮았으며 어떤 주장들이 시대와 어떤 상호작용을 하며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지나서 결국에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그 세계를. 당위의 세계들을 떠돌고 다니다 보니 의식적으로는 느끼지 못했지만 제 뇌가 피곤했나 봅니다.^^;; <개와 하모니카>라는 에쿠니 가오리의 단편집을 읽는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따지지 않아서 너무 편안하고 좋다’라는 뇌의 메시지가 전해졌거든요. ㅎㅎㅎ

 

제 뇌가 전해온 메시지를 곰곰이 들여다보며 생각해봅니다. 그 메시지가 전하는 건, 철학책의 세계와 소설책의 세계가 다르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철학책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파고듭니다. 필연적으로 철학책은 가치판단이 된 상태로 독자 앞에 나타납니다. 그에 비해 소설은 어떤 현상이나 사건들을 그 자체로 보여줍니다. 소설에서 가치판단은 책을 읽는 독자에게 달려있습니다. 물론 소설도 완벽하게 가치판단이 제거된 상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가치판단을 완벽하게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요.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어느 정도의 가치판단이 개입되었다고 소설이 철학책처럼 어떤 상황이나 사건을 파고들어가서 따지는 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소설은 어떤 상황이나 사건을 책을 읽는 독자에게 보여주는 장르라는 것이죠.

 

어쩌면 제 뇌는 다음번 당위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휴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나 봅니다. 휴식이 있어야 다시 당위의 세계로 들어가서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휴식으로서의 독서에 <개와 하모니카>가 잘 들어맞았다는 칭찬을 저런 형식의 메시지로 전했나 봅니다. 제 뇌가 제 자신에게 전하는 칭찬. 우습지 않나요? 본인이 본인에게 칭찬을 했는데 그 메시지를 해독하는 저 자신이라니. ㅎㅎㅎ

 

우스움과 더불어 소설을 읽으며 휴식하는 저 자신에게 또다른 말들이 떠오릅니다. 비평을 하지 않고 읽는 책읽기가 이렇게 편안하고 즐겁구나. 이건 저 자신의 분열증적인 책읽기에서 기원한 말입니다. 저는 소설을 읽으면서도 가끔씩 다른 스타일로 책을 읽는 또다른 저자신을 상상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책읽기는 책읽기와의 즐거움과는 거리가 얼마나 먼지. 이 책을 읽을 때도 어떤 특정 철학사조 스타일로 비평을 하는 저 자신이 떠올랐고, 그 사람이 이 책이 얼마나 끔찍하고 잘못됐는지를 주장할 수 있는지를 상상하니 얼마나 싫던지.

 

비평가 스타일로 책을 읽는 저 자신을 상상하다가 다른 영역의 상상이 떠오릅니다. 이번에는 도덕,윤리를 들먹이는 도덕군자 스타일의 책읽기를 하는 저 자신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어떤 책을 읽든 도덕,윤리를 들먹이며 잠시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일탈을 용서하지 못합니다. 그 사람은 일탈이 나오기만 몸을 부르르 떨며 비난의 말을 퍼붓기 바쁘고,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이해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일탈에 대한 욕만 하는 인간형입니다. 그 사람이 이 책을 읽고 얼마나 몸을 부르르 떨며 욕을 할지를 생각하니 왠지 즐거워지네요. 이런 제가 이상한 사람일까요?^^;;

 

어찌되었든 <개와 하모니카> 읽기는 즐거웠습니다.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섬세하고 독특한 필체와 인물묘사가 펼쳐보이는 어떨 때는 이해할 수 있고, 어떨 때는 이해할 수 없는 인간군상들의 소소하지만 이색적인 삶의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으니까요. 제가 가닿을 수 없는 영역의 이야기라서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에쿠니 가오리 스타일의 상상을 할 수 없는 인간이거든요.^^

 

에쿠니 가오리 스타일은 에쿠니 가오리 스타일대로 이해하면서 그것 자체를 즐기기를 한 것 같아요. 이건 어떤 책이든 그 책 스타일에 맞게 생각하면서 즐거움을 찾아내려는 저 자신의 독서 취향에서 기인한 것 같습니다. 딱히 커다란 주관이랄 것 없이 어떤 책이든 읽으면서 즐거움을 찾아내는 책읽기를 하는 인간이 저이거든요. 물론 그런 저에게도 한계를 넘어서는 책들은 있습니다. 그런 책들에는 가차없는 비판을 합니다. 천개의 사물들이 있다면 그 천개의 사물 각각에서 재미를 찾아내고, 만 개의 사물들이 그 만 개의 사물 각각에서 재미를 찾아내는 그런 책읽기를 제가 하고 있는 것 같아 만족감이 듭니다. 앞으로도 이런 식의 책읽기 여정을 할 예정이니 개인적으로 기대가 되네요. 앞으로의 독서 여정을 기대하며 이 글은 이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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