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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수집가의 기이한 책 이야기
가지야마 도시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그때 책의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책벌레가 내 몸을 갉아먹어서 이젠 골수까지 파고들었지요. 하하하...(20)
무언가에 푹 빠져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요? 저에게 질문을 한다면, 빠져든 대상이 세상에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면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언가에 푹빠져 거기에 대해서 알아보고 최선을 다한다는 게 좋은 것처럼 느껴져서요. 하지만 푹빠져드는 것을 넘어서서, 미쳐서 자신의 영혼까지 파는 단계에 이른다면 저는 그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영혼까지 파는 단계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빠져든 대상이 자신을 지배하는 상황이니까요. 내가 내 자신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자신을 지배하고, 자신은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은 마약중독과 비슷한 상황이 아닐까요? 아니면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아닐까요? 만약 이런 상황들이라면 이런 상황을 좋다고 할 수는 없잖아요?
가지야마 도시유키가 쓴 <고서 수집가의 기이한 책 이야기>는 제가 위에 쓴 것과 성향을 가진 이 중에서 책에 중독된, 책에 영혼을 판, 책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1960,1970년대에 일본 사회파 추리소설의 아버지 마쓰모토 세이초와 함께 그 당시 가장 많은 책을 팔았던 대중소설 작가 가지야마 도시유키는, 이 책을 쓰면서 일본 대중문학계에서 책에 미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하나의 장르로서 존재할 수 있음을 알려줍니다. 잠시 사람들의 시선에 잊혀졌다 '고전부' 시리즈의 요네자와 호노부와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의 미카미 엔의 의해 재발견된 이 책은, 이 장르의 고전이 되죠. 책에 미친 사람들이 나오는, 책에 얽힌 미스터리를 이야기하는 장르의 고전.
책을 읽으면 알겠지만, 이 책은 책에 미친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들의 행동에 대한 옳고 그름을 접고 나서 바라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에 미쳤고 책에 빠졌으니까요. 그런데 마지막 이야기에 다다르면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밀물처럼 밀려듭니다. 책의 마지막 이야기는 인간의 인육으로 책을 만들려는 집착에 빠져든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광기와 집착이 여기에까지 이르렀다면 이제 우리는 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건 아니지 않나하고. 하지만 광기와 집착에 빠져든 사람이 멈출 수 있을까요? 멈출 수 있다면 광기와 집착이 아니지 않을까요? 저는 생각해봅니다. 광기와 집착이 극한에 다다르면 도달하는 지점은 비인간성의 극한일 수 있다고. 그건 광기와 집착을 멈출 수 없기에 벌어지는 것이죠. 광기와 집착을 멈출 수 있는 이라면 광기와 집착에 빠져든 사람일 수 없겠죠. 그런데, 소설은 철학이 아니기에 광기와 집착에 대한 가치판단보다는 광기와 집착의 양상을 보여줄 뿐입니다. 판단을 내려야 하는 건 우리이죠. 결국 이 대중소설은 우리에게 물어봅니다. '이걸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고. 이 질문에 대답하는 건 책을 읽은 독자의 몫이죠.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서 이 소설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게 될 겁니다. 그 의미망 속에서 우리는 광기와 집착에 대한 자신만의 해답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해답을 가지게 된다 해도 광기와 집착에 빠져든다면 그 해답은 아무 도움도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광기와 집착의 힘은 너무 무시무시해서 우리의 이성 따위는 한번에 날려버릴 테니까요. 그래도 읽는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설사 광기와 집착의 힘이 너무 강하다 해도 우리에게 거기서 벗어날 미약한 가능성을 줄 수는 있으니까요. 저는 이 미약한 가능성에 이 책의 힘이, 독서의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