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잘 모르는 것을 그려?"
", 잘 모르는 것을 그리고 있네. 아니, 그리라는 대로 그리는 건가?"
"누가 그리라고 하는데?"
"글쎄다, 하느님인가?"(13)
너희는 모를 거야, 그 그림의 가치를. 거기에는 진리가 드러나 있어. 그 그림을 해석하면 소수란 무엇인가라는 수학계 최대의 수수께끼가 풀리고, 세기의 난문이던 리만 가설도 결론이 내려질 수 있어.(444~445)
데시마 가즈키요 씨는 <관서의 망>을 그려낸 것을 후회했어. 인간이 발을 들이밀어서는 안 될 영역이 있다고 깨달은 거야.(474)

<위험한 비너스>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입니다. 작가의 이름을 보는 순간, 혹시라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읽어온 이들이라면 뭔가가 머릿속에 그려질 것입니다. 어려운 말 없이 속도감 있게 진행되며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 드라마틱한 전개. 네, 이 모든 것들을 <위험한 비너스>를 다 보여줍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답게, 예술적이고 아름다운 묘사나 문장은 없지만, 독자로 하여금 부담없이 즐길 수 있게 하는 면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히가시노 게이고 했다'라고 해야할까요.^^;; 여기까지 쓰고보니 별로 쓸게 없네요. '자, 끝내겠습니다'라고 하면 좋겠지만(^^;;) 너무 빨리 끝낼 수는 없어 조금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림에 관한 부분이었습니다. 책의 스토리 전개상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그림 이야기의 핵심은(스포일러 느낌이 있어서 다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 이해해주세요.), 그 그림을 건드리거나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금기와 금지, 금단의 느낌이 나는 그림 이야기를 보고 있자나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생각들에 관해 한 번 자세히 말해볼께요.  

근대와 전근대를 구분하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중에서 <위험한 비너스>의 그림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금기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종교나 종교와 유사한 것들을 가지고 계급적 지배질서를 구축한 전근대는 금기나 금지가 많습니다. 신의 영역을 넘본다느니, 해서는 안 될 일을 한다면 벌을 받는다느니 하는 식의 말로 전근대는 사회의 질서를 무너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 무수한 금기나 금지를 남발합니다. 그건 과학이 발달하지 않은, 종교나 문화적 관습에 기반한 사회의 특징이기도 하겠죠. 그런데 신 중심의 사회가 아닌 인간 중심의 근대사회는, 전근대의 금기나 금지를 상당 부분 무너뜨리면서 발전해왔습니다. 유전공학의 발달 같은 게 대표적이겠죠. 전근대 같았으면 신의 영역이라고 금기시됐던 생명의 영역을 건드리면서 유전공학은 지금과 같은 발전을 이루어나갔습니다. 점점 사라져가는 금기와 금지. 그러면서 발전해나가는 게 근대 사회의 모습이죠.

그런데 이 책의 핵심에는 금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발견해서는 안되는 비밀을 간직한 그림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금지. 저는 이 부분이 재미있었습니다. 왜냐구요? 바로 이 책을 쓴 히가시노 게이고가 근대학문의 영역에서 가장 근대적인 이공계 출신이기 때문입니다. 금기나 금지 같은 것을 없애는 데 가장 앞장선 가장 근대적인 학문인 이공계 출신의 작가가 전근대의 특징 중 하나인 금기에 관한 책을 쓴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생각됐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추리소설은 처음부터 아이러니한 면이 있었습니다. 최초의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을 쓴 작가 에드거 앨런 포는, 근대라는 시대의 특징과 사상을 싫어하고 끔찍하게 여겼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근대에서 중요시여기는 논리가 중심이 된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개척하는 소설을 썼습니다. 추리소설은 처음부터 이런 아이러니를 간직하고 탄생한 셈이죠. <위험한 비너스>에도 <모르그가의 살인 사건> 같은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가장 근대적인 학문을 한 작가가 전근대적인 금기가 중심이 되는 소설을 썼으니까요. 여기까지 생각하고 보니, '제가 정말 쓸데없는 생각을 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런 것도 독서의 묘미 아니겠습니까.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을 종종 할 것을 다짐하면 이만 글을 마쳐야겠네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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